미국,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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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주 2022.08.15 21:30 PDT
미국,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2022년 6월 22일 워싱턴 상원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는 제롬 파월 연준의장 (출처 : Gettyimages)

인플레이션은 정말 정점을 지난 걸까요?
주식과 채권 시장의 기대처럼 연준은 금리인상 스텝조절에 나설까요?
제롬 파월 연준의장의 머릿속은 좀 더 복잡할지도 모릅니다
한시 바삐 인플레이션을 수출해야 하니까요
필요한 건 더더더 강한 달러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지났을지 모릅니다. 인플레이션 수출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이 이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본격적으로 올리기 시작한 건 지난 3월부터입니다. 3월 FOMC에선 걸음마를 떼더니 5월 FOMC에선 빅스텝을 밟았고 6월 FOMC에선 자이언트 스텝으로 나아갔습니다. 7월엔 울트라 스텝을 밟나 했지만 일단 자이언트 스텝에서 멈췄죠. 무슨 파월 춤선생의 금리 인상 탱고 교실도 아니고 온갖 스텝이 난무합니다. 사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춤솜씨는 엉망이지만 제법 뛰어난 기타리스트입니다. 매년 연말마다 워싱턴 연준 본부에서 기타 연주회를 열 정도죠.

어쨌든 파월 의장과 연준이 이렇게 기타를 퉁기며 금리 인상 스텝을 밟는 이유야 분명합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죠. 6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9.1%를 찍었으니까요. 너무 충격적이라 바이든 대통령조차 “도저히 인정못한다”며 “데이터가 뒤떨어진다”고 우겨댔을 정도죠. 이 발언만 떼어놓고 보면 트럼트 대통령이 한 말인줄 알았을 정도입니다. 바이든이 트럼프가 될 만큼 충격적이었단 얘기죠. 파월 춤선생의 금리 인상 칼춤 덕분인지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8.5%가 나왔습니다. 전달에 비해 0.6%p가 완화된 수치였죠. 인플레이션이 피크아웃됐다는 분석이 흘러나왔습니다.

인플레이션이 피크아웃된건 사실로 보입니다. 다행이지만 또 당연합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석달만에 2.25%p나 올렸는데 인플레이션 불길을 조금도 잡히지 않는다면 그게 더 큰 일일테니까요. 문제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상승세입니다.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은 인플레이션 실시간지수라는 걸 발표합니다. 어느 나라나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가 시장에 퍼지려면 몇 분기 이상 시차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클리블랜드 연준의 지표는 워싱턴의 높으신 연준위원들이 아니라 시장바닥 소비자들이 느끼는 현재진행형 체감 인플레이션율을 보여줍니다. 7월엔 6.05%였습니다. 8월엔 오히려 높아진 6.40%죠. 통계는 인플레이션 불길이 잡혔다고 말하는지 모르지만 서민물가는 아직이라고 외치고 있는 겁니다.

인플레이션을 세계 방방곡곡에 수출하라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 (출처 : Gettyimages)

사실 연준도 이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준위원과 지역연은총재들이 앞다퉈 긴축기조는 계속된다는 매파 발언을 계속하는 겁니다. 서민중산층의 체감물가를 낮추기 위한 연준의 해법은 금리 인상이 아닙니다. 금리 인상이 연출하는 강달러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인플레이션이 악몽인 건 달러를 아무리 쥐어줘도 세계 시장에서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가 없어서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교란 때문이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와 식량 위기 때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21세기 들어서 미국이 달러로 뭘 못 산다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그런데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 주변국의 상품을 헐값에 수입할 수 있게 됩니다. 2022년 6월 기준 미국 GDP에서 개인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68.2%입니다. 미국은 소비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특히 미국 서민층은 제품 구매가 삶의 낙입니다. 대부분 아시아나 유럽에서 열심히 땀흘려 제조한 상품들이죠. 강달러면 이걸 헐값에 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주변국 상품을 싼값에 사들이려고 달러 가치를 높이는 게 기축통화국 미국의 인플레이션 대처법인 거죠. 대신 주변국들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수입하게 됩니다. 통화가치는 상대적이니까요. 달러가 강하면 유로나 엔화나 원화는 약세가 됩니다. 우리나라 원화도 어느새 1300원대가 기본이 된지 오래입니다. 1년 전만 해도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에서 놀았습니다. 이렇게 자국 통화가 약세가 되면 수입물가가 상승합니다. 미국이 받았던 인플레이션 고통이 그대로 전가되는 것이죠. 인플레이션 수출입니다.

물론 각국 중앙은행들도 기준금리를 높여서 역통화전쟁을 벌일 순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 동안 50개국 이상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렸습니다. 문제는 금리인상이 유발하는 각국의 경기침체입니다. 대부분 미국 주식 투자자들인 우리는 미국의 경기침체를 걱정합니다만 어쩌면 연애인 걱정만큼이나 사서 걱정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글로벌 경기침체가 오면 다시 달러 가치가 오르거든요. 달러는 또 안전자산이니까요.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지면 미국은 인플레이션에서 더 빨리 탈출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한 마디로 현재로서 연준은 CPI가 피크아웃이 됐든 말든 금리인상을 멈출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 연준은 7월 CPI 발표 이후 보합세로 바뀐 달러 인덱스가 가장 못마땅할 겁니다. 한시바삐 인플레이션을 수출해야 하니까요.

내년엔 금리 인하로 돌아설까?

(출처 : Shutterstock)

연준의 물가 상승률 목표치는 2% 중반 언저리입니다. 지금의 8% 중반대와는 격차가 아주 크죠. 갈 길이 아주 멀다는 뜻입니다. 연준은 6월 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까지 밟으면서 2.5% 중립금리에 도달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중립금리란 인플레이션도 2%로 틀어막고 실업률도 3%대로 막는 야구로 치면 퍼펙트 게임을 뜻합니다. 미국의 고용현황은 완전고용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5일 발표한 미국 노동부의 고용보고서는 놀랍다 못해서 충격적이었죠. 7월에만 무려 94만명이 신규고용된 것으로 나왔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부턴 딱 물가 한놈만 때려잡으면 될 것 같습니다.

악마는 역시 디테일에 있습니다. 높은 고용은 결국 임금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 노동부 통계가 나온 직후 시장의 관심이 시간당 평균 임금에 쏠렸던 이유죠. 스크루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입니다. 임금보다 물가가 빨리 올라서 월급통장이 쪼그라드는 걸 말합니다. 이래서 인플레이션을 보이지 않는 소매치기라고 부르는 거겠죠. 스쿠루플레이션은 임금노동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비하게 만듭니다. 쉽게 말해서 노동시장 참여자들이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에 회사에 인플레이션에 비례하는 연봉인상을 요구하는걸 당연하다 여기게 만들죠. 게다가 현실적으로 주거비까지 상승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요인들은 인플레이션이 시차를 두고 계단식으로 출현하게 만듭니다. 1970년대가 그랬죠. 사실상 3차례의 인플레이션 쇼크가 있었습니다. 에너지 상승이 임금과 주거비 상승과 복합된 결과였죠. 인플레이션이 지금의 절반 수준인 4% 정도로 내려가도 이건 중물가에 불과합니다. 언제든 다시 튀어오를 수 있죠. 아직 뇌관이 남아있으니까요.

연준은 실수를 아주 싫어합니다. 새로운 실수를 하는 주제에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만큼은 죽어라 피하고 싶어하죠. 1970년대의 실수만큼은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죠. 그렇다면 파월 의장의 연준은 중립금리 이후에도 기준금리인상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채권 시장의 흐름은 2023년엔 연준이 정책선회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보여줍니다. 장단기 스티프닝이 일어났거든요. 과연 연준의 기준금리 스티프닝도 이렇게 쉽게 끝날까요?

충격적인 6월 CPI가 발표된 직후부터 최근까지 제롬 파월 연준의장과 연방준비제도 내부를 취재하고 연구했습니다. 더밀크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제롬 파월 스토리 시리즈를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주식을 포함한 위험 자산 시장에 뛰어든 사람이든 노동 시장에만 참여하는 사람이든 미국과 전세계 시장 참여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인물입니다. 정작 제롬 파월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선 우리의 관심도 적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수출해서 우리 삶을 강팍하게 만들수도 있고 주식 시장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만드는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파월이라는 사람이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솔직히 금융시장은 날씨와 같습니다. 어제는 100년만의 폭우가 쏟아졌다가 오늘은 섭시 35도의 무더위가 찾아오는 변화무쌍함이 본질이죠. 인플레이션이 피크아웃됐어도 연준의 인플레이션 파이팅은 가속될거란 전망 역시 하나의 분석일 뿐입니다. 그저, 나름의 최선을 다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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