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팅팟 미국, 증오범죄가 기술 성장도 막는다..."다름 인정해야 차별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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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우 2023.01.13 15:22 PDT
멜팅팟 미국, 증오범죄가 기술 성장도 막는다..."다름 인정해야 차별 사라져"
(출처 : Shutterstock)

[에스닉미디어서비스 'Stop The Hate' 캠페인]
소수계 비중 큰 캘리포니아서도 인종혐오 범죄 잇따라
한국-베트남 부부 "결혼 초기, 문화-종교적 차이로 갈등"
"아내 성 따르거나 한국 음식 만들어 먹으며 다름 인정"

지난 2021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스파 총격사건은 미국 내 여전한 ‘인종차별’과 ‘인종혐오 범죄’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20대 백인 남성에 의한 총격사건은 한국계를 비롯한 아시아계 여성 6명을 포함, 총 8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아시안 커뮤니티를 비롯한 소수계 사회는 총격 사건 피해자에 대한 정의를 요구하고,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아시안 여성 혐오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이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미국 내 인종차별 철폐에 앞장서 온 대만계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낸시 왕 위엔은 이 사건에 대해 “전국적으로 유독 아시안 여성들이 증오범죄에 노출되는 비율이 높다”면서 “이는 인종차별과 성적인 차별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애틀랜타뿐만이 아니었다. 2022년 1월에는 중국계 여성이 지하철역 선로에 떠밀려 목숨을 잃었고, 2월에는 집에 쫓아온 남성에게 살해당한 한국계 여성도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아시안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는 급증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8263건의 증오범죄가 발생했다. 전년대비 1000여 건이 증가한 수치다. 특히 아시안에 대한 증오범죄는 279건을 기록하면서 전년대비 70% 이상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수계 비중 큰 캘리포니아서도 인종혐오 범죄 잇따라

히스패닉과 아시안 등 소수계 비중이 높은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인종혐오 범죄는 그치지 않았다. 2021년 1월 80대 아시아계 남성 비차 라타나팍디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산책을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10대가 산책 중인 그를 갑자기 밀쳤고,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이 사건은 CCTV를 통해 범행 사실이 확인됐고, 영상이 공개되자 아시안 혐오범죄 규탄 운동에 불을 지피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1일(현지시간) 시 측은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 인종 혐오범죄를 예방하자는 의미에서 당시 그가 숨진 거리의 이름을 ‘소노라 레인’에서 그의 이름을 따 ‘비차 라타나팍디 웨이(Vicha Ratanapakdee Lane)’로 변경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비교적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살아간다. 지난 2020년 연방센서스국 통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의 인구 중 라티노 비중이 39%를 차지했다. 백인은 35%, 이어 아시아 태평양계가 15%로 뒤를 이었다. 흑인 비중은 5%에 머물렀다.

아시아계 비중이 높은 캘리포니아주, 특히 세계 기술 혁신의 중심지인 베이 지역에서도 아시안들은 크고 작은 증오범죄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여러 인종들이 '혁신'을 매개로 매진하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산호세에 거주하는 김승희(가명, 40세), 대니얼 판(가명, 43세)씨 부부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한국 출신인 김 씨와 베트남계 미국인인 판 씨는 부부의 연을 맺고 미국에 정착한 지 올해로 15년이 됐다.

김 씨는 “사실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기 때문에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산호세 길로이 인근 지역은 백인 인구 비중이 높다. 한때 이 지역을 거닐다가 백인 아이들이 중국말로 수군거리면서 웃고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상황은 몇 번이나 반복됐다.

그는 “당시에는 그저 아이들의 장난으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남편으로부터 ‘모르는 언어로 수군거리는 등의 행동은 인종차별과 같다’는 말을 듣게 됐다”며 “이런 환경에서 자녀들을 키우기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회고했다. 

하늘에서 본 샌프란시스코 전경 (출처 : 더밀크 )

소수계 인종 간 결혼 "문화, 종교적 차이로 갈등"

김 씨 부부는 미국 내에서도 소수계 인종끼리 결혼한 사례다.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마치고 영어 어학연수차 미국에 온 김 씨는 영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데이트 앱 사이트를 통해 지금의 남편인 판 씨를 만났다. 판 씨는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생후 3개월 만에 미국에 왔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줄곧 자랐다. 영어가 모국어인 영락없는 이민 2세다. 두 사람은 만난 지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결혼에 골인했다.

김 씨는 “한국인이 아닌 남성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다. 한국인 특유의 가부장적인 생각이 싫었기 때문”이라며 “만나보니 배려심이 깊었고, 인내심도 많았다.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느끼게 돼서 결혼까지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남편 판 씨도 아내에 대해 “베트남 여성들과는 다른 아내의 도전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혼을 결심했을 때부터 두 사람은 인종, 종교적인 벽에 부딪쳤다. 우선 김 씨의 부친은 남편이 베트남계라는 사실에 반대했다. 어머니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판 씨의 집에서도 김 씨는 달갑지 않은 며느리였다. 김 씨에 따르면 베트남에서는 결혼식 당시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절을 하는 풍습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인 김 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씨는 “남편과 시청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시부모님은 오시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이 10년은 지속됐다. 결국 시댁 측 친척들에게 인사를 한 이후에 진짜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면서 힘든 시절을 떠올렸다.

"미국선 모두가 이민자... 개개인의 다름, 구별 말고 존중해야"

오히려 남편과의 문화적인 차이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김 씨. 미국에서 자란 탓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권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김 씨는 말했다. 종교적인 문제 역시 “결혼 전에 남편과 교회에 함께 나가기로 약속한 후 지금까지 함께 출석하고 있다. 세례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음식도 한식이나 미국 음식을 즐겨 먹는다. 베트남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배려였다. 김 씨는 “남편은 모든 음식을 다 잘 먹는다”며 “한국음식 조리법을 알려줬더니 지금은 한국 음식도 잘 만들어준다”라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김 씨 부부의 두 자녀는 남편 성이 아닌 아내의 성을 딴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힘들게 아이를 출산하는 아내의 모습을 본 남편 판 씨가 아내 성을 본 따 이름을 짓자고 제안한 것이다.

판 씨의 이런 성향은 그의 직업에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그는 20년 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학생들에게 미국 역사에서부터 인종과 다양성에 대해 교육하면서 생활에서도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 속에서 화합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김 씨는 “아이들이 아직 2살 반, 6개월이기 때문에 인종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사용한다. 2살 난 아이는 한국말을 곧잘 알아듣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편은 인종차별과 관련해 백인들 역시 모두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자들이라는 사실을 늘 이야기한다”라고 말했다. 백인들도 결국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기 때문에 일찍 미국으로 건너와서 자리를 잡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월감을 갖고,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 학교에서 교육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아마 우리 아이들도 자라면서 이렇게 교육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다양한 인종 비율이 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김 씨는 “지금도 기업이든 기관이든 높은 직급은 대부분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면서 “인종 구성이 달라지면 우리 자녀 세대에는 더 많은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문화의 차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문화의 차이보다는 그냥 개개인이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워낙 많은 인종이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에 인종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차별의 시작”이라면서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다 같은 한국 사람이 아니듯 인종이 아닌 개개인이 다 다른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차별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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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에스닉 미디어 서비스(EMS)'의 'Stop The Hat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EMS는 미국 내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각종 증오범죄와 인종적 분열을 막기 위해 '캘리포니아 아시아 태평양계 아메리칸 어페어(CAPIAA)'와 협력해 'Stop The Hate'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더밀크는 미국의 기술과 자본시장 동향을 한국에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권익 신장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밀크는 미국 내 한인들이 차별없는 환경 속에서 경쟁하고, 한인들이 이룬 성과를 통해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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