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M은 끝났다" vs "응용 앱은 빨려들어간다"… 이경전·류중희 3대 격돌
[지상 중계] 디엘지X더밀크 세미나
한국의 대표적 AI 학자인 이경전 경희대 교수와 AI 스타트업 대표인 류중희 RLWRLD 대표가 지난 4월 28일 더밀크와 디엘지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정면충돌했다. LLM의 운명, 어플리케이션 레이어의 미래, 모트의 존재 여부를 두고 두 사람이 보여준 AI 시대 창업의 두 풍경. 더밀크가 지상 중계하고 분석했다
"질문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이경전 경희대 교수가 조원희 디엘지 대표변호사의 첫 질문을 단호하게 잘랐다. "AI 에이전트가 단순한 비서를 넘어 독립적 경제 주체가 되기 위한 임계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이 교수는" AI가 독립적 경제 주체가 된다는 시나리오, 그리고 생각하는 AI라는 표현 자체가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챗GPT가 '13초 동안 생각 중'이라고 표시하는 그 동작은 사고가 아니라 토큰 생성일 뿐이라는 것이다. AI 전문가 다운 정밀한 해체였다.
곧이어 류중희 RLWRLD 대표가 마이크를 받았다.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직접 만드는 사람의 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만드는 입장에서는 생각하는 그 이상의 결과가, 훨씬 빨리 나온다" 며 "결국 어플리케이션 레이어 사업은 다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고 말했다.
대담은 시작 5분 만에 한국의 대표 AI 관련 학과 교수와 AI 스타트업을 직접 만든 대표가 반대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 사람은 "LLM의 시대는 끝났고 응용의 봄이 온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응용 레이어는 진공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했다.
두 패널의 이력은 한국 AI 담론의 두 축을 대변한다. 이경전 교수는 KAIST 경영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30년 가까이 비즈니스 모델과 AI 응용을 연구해온 학자다. 세계인공지능학회 혁신적 AI 응용상을 4회 수상했고, 한국에서 AI 에이전트 개념을 가장 먼저 책으로 풀어쓴 사람이며, 현재 AI 서비스 학회 공동회장이다.
류중희 RLWRLD 대표 역시 KAIST 출신으로 퓨처플레이를 설립해 8년간 VC로 활동하다, 휴머노이드 로봇 지능을 만드는 RLWRLD를 창업, 직접 운영하고 있다. 시드 라운드에서 600억 원을 모은, 한국에서 가장 큰 시드 라운드 중 하나의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서 출발했지만 30년 동안 다른 길을 걸었다. 이경전 교수는 오랜기간 AI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국내 드문 학자고 다른 한 사람은 현재 피지컬AI 모델을 실리콘밸리에서 도전하고 있는 사업가다.
더밀크와 법무법인 디엘지(DLG), 한화생명 드림플러스는 지난 4월 28일 서울 서초구 드림플러스에서 '테크 앤 바이브 : AI 하이프를 넘어, 창업자는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 란 주제의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더밀크와 디엘지는 AI 시대 한국 스타트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글로벌 미디어와 법무법인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뜻으로 업무협약을 맺었고 이번이 두번째 세미나다.
이번엔 특별 초대된 30명 내외의 스타트업 창업가와 투자자가 청중으로 참여했으며 조원희 디엘지 대표변호사가 호스트를 맡았다. 1부에서는 이경전 경희대 교수와 류중희 RLWRLD 대표가 '추론 모델, AGI 시대의 창업, 빅테크 시대의 모트'를 주제로 약 한 시간 동안 대담을 진행했다. 2부에서는 손재권 더밀크 대표가 "실리콘밸리 2026: 우리가 알던 그곳, 그것은 없다"를 주제로 약 50분간 기조 발제를 했다. 행사는 뜨거운 열기 속에 세미나 종료 후에도 자유 네트워킹으로 이어지며 밤 9시를 넘겨 마무리됐다.
첫 번째 라운드 : 추론 모델은 게임의 룰을 바꾸는가?
조원희 디엘지 대표 변호사가 던진 첫 질문은 실리콘밸리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추론 모델(Reasoning Models)에 대한 것이었다.
이경전 교수는 질문의 전제를 해체한 뒤 자신의 본 테제를 꺼냈다. "LLM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AI 응용의 봄이 옵니다" 작년 8월 GPT-5 출시 직후 한국경제 칼럼에서 그가 썼던 문장이라고 소개했다.
LLM의 발전은 포화에 가까워졌고 박사학위자 수준의 AI가 이미 손에 쥐어진 만큼 앞으로 2~3년은 LLM 보다 LLM을 활용하는 기법, 즉 응용 레이어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지난해 하반기에 리처드 서튼, 안드레이 카르파시, 일리야 수츠케버, 얀 르쿤이 비슷한 이야기를 내놓으면서 그의 진단은 일정한 학계 합의를 등에 업게 됐다.
다만 LLM 붐을 계속 띄워야 하는 오픈AI와 앤트로픽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그는 단서를 달았다. 최근 유출된 앤트로픽 소스코드의 평가가 엇갈리는 점, 그리고 '하네스(마구) 엔지니어링'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점을 그는 "현재 모델의 난제를 드러내는 단서다"고 해석했다. AI가 얼마나 변덕스러우면 마구를 채워야 한다는 표현이 나오겠느냐는 것이다.
류중희 대표의 출발점은 정반대였다. 그는 결과물을 평가하는 자리와 결과물을 빚어내는 자리는 보는 풍경이 다르다고 전제했다.
AI를 실제로 만드는 입장에서는 외부의 기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훨씬 더 큰 도약이 임박해 있다는 것이 그의 관찰이었다. LLM이라는 명명조차 이미 부적절하며, 모델은 언어를 진작에 초월해 멀티모달 데이터를 빨아들이며 월드 모델 경쟁으로 넘어갔다.
핵심 변수는 두 가지였다. 웹에 없는 데이터를 어떻게 모을 것인가? 그리고 트랜스포머가 끝까지 위너로 갈 것인가 아니면 더 혁신적인 구조가 등장할 것인가?
류중희 대표는 "진정한 싱귤래리티는 명확하다. 다음 세대 파운데이션 모델의 디자인을, 그 이전 세대 AI가 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다"고 정의했다. 그 순간 이후에는 AI들끼리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는 방식과 언어로 토론하고 그 결과물의 좋고 나쁨조차 인간은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류 대표는 "파운데이션 모델 위에 얹는 응용(어플리케이션) 레이어 사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결국 모든 것이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지능의 지분 따먹기 게임'이며,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접근은 모두 탈탈 털린다"고 직격했다.
더밀크의 해석
두 사람의 첫 라운드 충돌은 단순한 견해 차이가 아니라 시간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다. 이경전 교수의 사고는 사이클 평균회귀로 분석된다. 이 교수는 1990년대 전문가 시스템 붐, 2000년대 닷컴 붕괴, 2010년대 딥러닝 1차 붐을 모두 현장에서 지켜봤고 연구했다. 이경전 교수에게 자연스러운 결론은 "이번에도 결국 응용이 본진이고 코어 모델은 평탄화된다"는 것이다.
반면 류중희 대표의 사고는 단절·도약형이다. 분기마다 모델이 바뀌고 라운드마다 밸류에이션 룰이 다시 쓰이는 사업가의 시간에서 '사이클 평균회귀'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론이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한 사람은 패턴 회귀를 읽고, 다른 한 사람은 임계점 돌파를 읽는 것이 이번 세미나의 매력이었다.
두 번째 라운드 : AGI 시대의 창업가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조원희 디엘지 대표 변호사는 두 번째 질문으로 다리오 아모데이가 말한 2026~2027년 AGI 도달 시점을 가정했다. 그렇게 되면 추론 비용이 0에 수렴하는데, 창업가는 무엇을 봐야 할까?
이경전 교수는 '일상의 욕망' 사례로 답을 풀어갔다.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AI가 새 사람을 찾아줄 수 있을까? 알약 하나로 하루 식사를 대체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은 누가 풀어줄 것인가? 단편적 농담처럼 보이는 예시를 늘어놓은 뒤 이 교수는 "인간의 욕구는 너무나 다양하고, 통계화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이 비슷한 욕구를 공유한다. 그 욕구를 해결하는 행위 자체가 곧 경제다. 10년 뒤에도 경제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 어느 누구도 고통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발견해내는 사람, 즉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으로 현재 많은 AI 구루들이 주장하는 것과 일치한다.
류중희 대표는 같은 명제를 인정하면서도 "경제는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욕망을 해결하는 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고 밀어부쳤다.
근거는 스포티파이였다. 스포티파이의 추천 알고리즘은 어떤 인간 에디터보다 자신의 음악 취향을 잘 안다는 사실은 검증됐고, 어떤 영역에서는 이미 인간 지능을 넘었다는 진단이다. 따라서 "창업가는 인간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푸는 사람"이라는 폴 그레이엄식 정의는 곧 성립하지 않게 된다.
여기서 류 대표는 부가가치의 귀속 문제를 지적했다. 폴 그레이엄은 스타트업을 '고속성장하게 설계된 회사'로 정의했지만, 그 고속성장의 부가가치를 창업가가 아니라 AI 모델 회사가 가져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그레이엄이 정의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취미활동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회사 내부 KPI 기준을 그대로 공개했다. "인건비보다 토큰값이 훨씬 더 많이 나오는 시대가 곧 온다. 1인당 연봉과 1인당 토큰 사용액이 비슷해지는 것이 정상이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부가가치는 응용 레이어가 아니라 모델 레이어로 응축된다.
대담은 인간 본성의 잔존 여부에서 한 번 더 갈렸다.
이경전 교수가 "10년 뒤에도 인간은 외롭지 않을까? 이성 친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인간 본성의 항상성을 옹호하자, 류 대표는 정반대 풍경을 그렸다. "10년 뒤에는 로봇 데이트 상대를 데려오는 사람이 더 가난하게 보일 것이다. 사람을 데려온 사람이 럭셔리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20대 중에 진심으로 이성과 연애하는 데 흥미가 없는 무성애적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고, 음악과 쇼츠 같은 다른 자극에서 더 강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인간의 OS에 깔려 있다고 믿어온 본능조차 변하고 있는데, 10년 뒤 인간의 욕망을 우리가 지금 정의하는 그것으로 단정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더밀크의 해석
이 라운드는 두 사람의 부가가치 귀속 모델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지점이다. 이 교수의 모델은 고전 경제학에 가깝다. 욕망이 있는 곳에 시장이 있고, 시장이 있는 곳에 분업이 있으며, 분업의 한 자리는 창업가의 몫이다. AI는 그 분업 구조에서 도구의 역할을 하지, 분업 구조 자체를 폐기하지는 않는다.
류 대표의 모델은 플랫폼 경제학, 정확히는 승자독식의 극단형이다. 부가가치가 분업 라인을 따라 균등하게 흐르지 않고 인텔리전스의 핵심을 가진 자에게 빨려 들어가 응축된다는 모델이다. 그가 "토큰값이 인건비를 넘어선다"고 말한 것은 회계적 관찰이 아니라 부가가치의 흐름이 인간의 노동에서 모델의 추론으로 옮겨갔다는 신호다. 두 모델은 내적으로 일관되지만, 어떤 모델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창업의 의미가 정반대로 결정될 수 있다.
세 번째 라운드: AI 빅테크 시대의 해자는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AI 빅테크 시대의 해자(Moat)에 관한 것이었다.
이경전 교수는 "사업은 빅테크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의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빅테크가 잘하면 가져다 쓰면 되고, 빅테크가 더 잘할 것 같으면 그 영역을 떠나면 된다. 빅테크 때문에 어렵다"는 토로는 IT와 AI 분야 스타트업의 이야기일 뿐이다"고 말했다.
바이오 같은 분야에서는 빅테크가 잘할수록 토큰값이 싸지고 성능이 좋아지니 환영할 일이라는 진단이다. 마이클 포터적 경쟁 관점이 아니라 블루오션적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이경전 교수의 창업론이이다.
류중희 대표는 같은 질문을 다르게 해석했다. 결국 지분 따먹기 싸움이라는 것이다. 틴더 같은 서비스도 오픈AI가 마음만 먹으면 출시 첫날 1위가 될 수 있다. 류 대표는 "챗GPT 유료 사용자가 이미 수십억 명이고 그들의 취향까지 다 알고 있으니 매칭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안 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결국 AI와 결합한 회사를 이길 수 없으며, 빅테크는 안 하고 있을 뿐 나중엔 인수를 통해 그 영역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관찰이다.
류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 교수들이 다 창업하고 있고, AI와 싸워서도 이길 0.00001%의 천재만 창업할 자격을 가지는 시대가 이미 왔다"고 말했다.
AI 시대 해자에 대한 입장은 이 대담에서 가장 시니컬하면서도 정직한 발언이었다. 자기 회사가 삼성, LG, SKT, ANA, KDDI 투자를 받아 산업 데이터를 독점한다는 식의 자기 위안을 모트라고 부르지만, 대기업이 마음만 바꾸면 종이 한 장보다 얇은 우위에 불과하다는 진단이다. "내가 모트라고 얘기하는 게 모트가 아니라는 걸 아는 창업자만 그나마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류중희 대표는 "빅테크는 경쟁자가 아니라 플랫폼이다"며 "지금은 빅테크들조차 빨리 땅따먹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빅테크들끼리도 누가 이길지 모르니 모두에게 멍을 들여놓는 합종연횡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과거는 일대일로 싸우는 태권도 게임이었다면 지금은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엎어버리는 유도 게임이라는 비유다.
더밀크의 해석
이날 이경전 교수와 류중희 대표의 의견 충돌은 견해 차이라기 보다 같은 풍경의 다른 시간대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정직한 보고서였다.
이경전 교수가 "LLM은 끝났고 응용이 시작된다"고 말할 때 그는 코어 모델 발전이 평탄화되는 구간에서 응용 사업자들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응시하고 있다. 류중희 대표가 "응용 레이어는 진공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말할 때 그는 그 시간 창문이 닫히는 순간 이후를 응시하고 있다. 이 교수의 시간은 향후 2~3년이고, 류 대표의 시간은 향후 5~10년이다. 청중인 창업가는 두 시간을 모두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유용한 결론은 무엇일까? 향후 2~3년에는 이 교수의 권유대로 고객의 고통을 푸는 응용 사업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업이 5~1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인지를 동시에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 류 대표의 경고다. 두 사람의 답을 동시에 받았다는 것은 청중이 두 시간을 겹쳐 볼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다.
더밀크의 시각 : 당신(스타트업)은 지금 무엇을 꿈꾸는가?
AI 시대, 당신은 지금 무엇을 꿈꾸는가?
이 질문은 이번 세미나 동안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토론의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경전 교수와 류중희 대표는 LLM의 운명, 어플리케이션 레이어의 미래, 모트의 존재 여부를 두고 정직하게 부딪쳤고, 그 충돌은 한국 AI 담론이 지금까지 보여준 가장 압축된 형태의 지적 정직성이었다.
이번 세미나를 마치며 떠올렸던 것은 이경전 교수, 류중희 대표 등 한국 AI 산업의 대표 주자들이 말한 내용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과연 "우리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란 질문이었다.
AI는 도구다. 동시에 경제이고, 생산양식이다. 도구는 사용자의 꿈을 따라간다. 사용자가 꿈꾸지 않는 도구는 외국에서 누군가 꿈꿔서 만들어낸 결과물을 비싸게 빌려 쓰는 일이 된다.
경제는 욕망의 집합체다. 욕망이 한국 사회에서 정직하게 발화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외국에서 발화된 욕망의 하청 구조로 편입된다. 생산양식은 사회가 무엇을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을 만들어내고 싶은지 묻지 않는 사회는 결국 다른 사회가 만들어낸 것을 조립하는 자리에 머문다.
AI 시대에 이 세 층위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한국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꿈을 발화하지 않으면 향후 10년 동안 자신의 꿈을 발화할 기회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 전반이 지난 30년간 자신의 꿈을 발화하지 않고도 잘 작동해왔다. 미국이 인터넷을 만들면 한국은 빠른 인터넷을 만들었고, 미국이 스마트폰을 만들면 한국은 그 스마트폰의 부품을 만들었으며, 미국이 클라우드를 만들면 한국은 그 클라우드 위에서 돌아가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이 모델은 작동했다. 한국이 따라잡아야 할 대상이 분명했고, 따라잡는 속도가 한국의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이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잡으려고 달리는 동안 대상이 더 빨리 도망간다. 따라잡는 속도가 아니라 도착해야 할 자리를 스스로 정의하는 능력이 경쟁력의 본질이 된다.
'잘 먹고 잘 살자'가 AI 시대 한국인의 꿈의 전부가 되면 안된다. 더 정확하게는, 잘 먹고 잘 살자조차도 누군가 다른 나라의 꿈을 이뤄낸 결과물을 빠르게 따라잡아 누리자는 의미에 가깝다. 우리에게는 따라잡을 대상이 있을 뿐, 도달해야 할 자리가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무엇을 꿈꿔야 하는가를 밝혀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고통과 한국 사회의 욕망을 자기 언어로 발화해야만 답이 나온다. 그 발화가 시작되지 않으면, 한국 AI 생태계는 외국 모델 위에 한국어 UI를 입히는 자리에 머물 것이다. 류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그 자리는 다음 모델 출시일에 증발하는 자리다.
실리콘밸리가 만들어낸 도구를 어떻게 더 잘 쓸 것인가?가 아니라, 그 도구로 당신은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은가? 한국 사회의 어떤 모순을, 한국 사회의 어떤 욕망을, 한국 사회만이 풀어낼 수 있는 어떤 문제를 당신은 자신의 사업으로, 자신의 연구로, 자신의 자본으로 풀어내고 싶은가?란 질문이 도출되야 한다.
더밀크와 법무법인 디엘지가 향후 1년 동안 가장 자주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한국은 지금 무엇을 꿈꾸는가? 그리고 당신은 지금 무엇을 꿈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