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실패. AI가 지배하면 이렇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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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권 2023.05.07 08:49 PDT
'혁신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실패. AI가 지배하면 이렇게 될까?
샌프란시스코 유니온스퀘어 앞 중심가에 있는 유명 백화점 노드스트롬. 노숙자가 매장을 침입하기를 반복하자 '안전' 차원에서 샌프란시스코 매장 철수를 선언했다 (출처 : Gettyimages)

샌프란시스코, 자유와 낭만 혁신의 도시에서 급격히 위험 도시로 전락
거리엔 노숙자 점령, 마약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중심가 백화점 유통 매장 철수 잇따라... 공실률도 30%대로 급등
기술의 발전보다 '정치의 실종'이 더 문제.

“눈앞에서 4초만에 털어갔어요. 내가 보고 있었는데도 털어갔습니다. 카메라와 여권도 훔쳐갔어요. 경찰에 전화해도 오지도 않아요”

지난 4월 30일 늦은 저녁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출장을 왔다는 한 언론사 기자 A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렌터카가 털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통을 터트리며 물어왔다.  성공리에 출장을 마치고 다음날 출국하기 전날에 장비와 가방을 털린 것이다.

사실 샌프란시스코 및 베이 지역(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익숙한 장면이다. 관광객이나 출장으로 온 사람들은 ‘자유와 낭만’ ‘혁신의 수도’ 의 이미지가 강한 샌프란시스코가 얼마나 위험한 도시가 됐는지 알지 못한다.

화창한 날씨와 금문교(골든 게이트 브릿지), 소샬리토 등의 세계적 관광 지역에 취해 있다가 좀도둑들에 ‘당하면’ 그때야 위험천만한 현실을 깨 닳게 되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예전엔 이렇게 관광객들이 당하는게 ‘좀도둑’이었는데 이제는 노숙자에게 공격을 받거나 위협을 받는 것도 염두 해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전 스퀘어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밥 리가 대낮에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서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도 큰 충격을 줬기 때문.이 사건은 면식범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지만 치안 우려에 대한 불안감은 해소하지 못했다. 문제는 경찰을 불러봐도 소용없다는 점이다.

급기야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트위터를 운영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SF 시내에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영화나 소설, 게임 등에 등장하는 인류 문명이 붕괴한 이후 지구의 모습)를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 대낮에 샌프란시스코 현장을 보면 일론 머스크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느낀다고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의 느낌을 받게 된다.  

트위터 본사는 샌프란시스코 시청 근처에 있다. 트위터 본사 인근 지역은 이미 노숙자가 점령하다시피 해서 대낮에도 인적을 찾을 수 없다.

트위터 샌프란시스코 본사. 주변은 대낮에도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다. (출처 : 더밀크 손재권)

샌프란 중심가 백화점 유통 매장 철수 잇따라

5월 들어서 버티지 못한 유명 유통 상점들도 ‘철수’를 선언했다.

유명 백화점 노드스트롬(Nordsstrom)은 소매 절도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결국 백기를 들게 된 것.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유니온스퀘어 앞 매장 2개를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각각 7월 1일과 8월말에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이 회사 최고 매장 책임자 제이미 노드스트롬은 “지난 35년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고객 서비스를 하고 지역 사회에 투자했지만 지난 몇년간 극적인 상황변화는 더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8번가와 마켓스트리트가 만나는 중심가에 가장 큰 슈퍼마켓 중 하나였던 홀푸드도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한지 1년이 되지 않아 ‘폐점’을 선언했다.

홀푸드가 샌프란시스코 매장 철수를 결심하게 된 것은 매장에 있는 직원의 안전 때문이었다. 노숙자들이 매장에 들어와 물건을 훔쳐가거나 직원을 위협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홀푸드도 공식적으로 이 매장을 폐쇄하는 이유로 “매장 주변의 마약 사용과 범죄로 인한 거리 상황 악화 때문이다”고 말했다. 매장 오픈 1년도 안 돼 직원들이 560건 이상의 부랑자, 마약, 폭력 사건에 대한 긴급 전화를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는 가을엔 유니온스퀘어에 있던 삭스 피프스 에비뉴도 매장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개점 1년도 안돼 폐점을 선언한 홀푸드 샌프란시스코 (출처 : 홀푸드 )

둠 루프에 빠진 샌프란시스코

이렇게 기업들이 떠나면 세금이 줄어들고 시 재정이 타격을 받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시는 올해 약 8억달러(1조 616억원)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시 재정이 타격을 받으면 안전과 치안, 교육에 투여하는 예산이 줄어들고 이는 또 다른 ‘이탈’을 초래하게 된다.

인공지능 열풍에 샌프란시스코에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거나 사업 확장을 위해 지사 설립을 고려한다고 해도 직원의 안전 문제로 인해 창업이나 이전을 꺼려할 가능성도 높다.  샌프란시스코의 폭력 범죄율은 전국 평균보다 40% 높은 상황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가격도 전년 대비 19.2%나 폭락했으며 공실률은 30%에 달한다.

이 같은 사실 때문에 샌프란시스코가 ‘둠 루프(파멸의 고리)’에 빠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9.11 테러 이후 몇년간 뉴욕이 공동화 현상을 나타냈듯 샌프란시스코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안전과 치안’ 문제로 공동화 현상을 초래하고 이는 또 다시 치안 불안으로 빠져들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는 것이다 . 실제 프로퍼티 클럽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범죄율은 전국 평균보다 111%, 캘리포니아 평균보다 91% 높다.

특히 헤로인 보다 50배 더 강력한 펜타닐의 빠른 확산은 도시의 많은 지역을 '좀비 구역'으로 만들었다. 도로엔 펜타닐의 과다 복용으로 스러져 있거나 좀비 처럼 행동하는 노숙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한 사람은 1143명인데 같은 기간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사람은 1,985명이었다. '코로나'가 이 도시의 '마약' 문제를 가리게 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뿐 아니라 이웃 도시인 ‘오클랜드’도 범죄와 치안 문제로 지역의 유명 프로스포츠 구단이 속속 떠나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연고지 이전을  결정한 것. 한때 미국의 3대 프로 스포츠인 야구(NBA), 미식축구(NFL), 농구(NBA)를 보유했을 정도로 번성했던 오클랜드는 ‘범죄와 마약 도시’ 오명을 벗지 못하고 결국 모두 떠나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이 중 미식축구와 야구는 모두 ‘범죄와 도박의 도시’에서 ‘가족 리조트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라스 베이거스로 연고지를 이전하게 됐다.

텅빈 콜로세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라스 베이거스로 이전을 결정했다. 오클랜드는 MLB 프로야구에 걸맞지 않은 낙후된 경기장과 소수의 팬들로 외면을 받아왔다. (출처 : Gettyimages)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샌프란시스코? ... 원인은 정치의 실종이 만든 재앙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밸리가 아닌 '뇌(세레브럴) 밸리의 본부'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AI 붐을 타고 있다. 하지만 AI가 지배하는 세상은 오늘날 '샌프란시스코'와 같이 둠 루프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혁신, 자유, 낭만의 상징에서 도시 공동화의 ‘둠 루프’로 급격히 빠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치안과 안전 문제와 함께 샌프란시스코가 9.11 이후의 뉴욕에 이어 두번째 ‘둠 루프’ 도시로 꼽히는 이유는 ‘원격 근무’로 수행할 수 있는 직업이 많기 때문도 꼽힌다.

우버, 리프트, 에어비앤비 등 혁신 기업의 메카로 불렸으며 테크 기업의 수도인 샌프란시스코는 기술의 영향으로 본사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컴퓨터, 공학,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주민 7% 넘게 지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이 뿐 아니라 같은 기간 요식업 종사자의 55%, 서비스업 34%, 영업직 33% 종사자가 떠났거나 직업을 잃었다.

하지만 이 것도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큰 문제로 ‘정치의 실종’ ‘리더십의 부재’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샌프란시스코는 자유주의 문화가 강한 곳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좌파보다 더 왼쪽인 ‘근본 좌파’ 정치인이 많다. 시 의회는 물론 각 지역 교육위원회 등을 모두 ‘근본 좌파’가 장악한 상황.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은 이제는 ‘평등’보다  ‘안전과 치안’을 원한다. 하지만 ‘보편적 기본 소득’ 보장과 ‘보모 국가(Nanny state)’를 추구하는 샌프란시스코 내 영향력이 큰 정치인들이 샌프란시스코 내 노숙자 및 범죄 문제를 “백인 우월주의로 본 인종 차별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 경찰력 확대가 자유와 낭만의 도시가 아닌 ‘경찰 도시’. ‘감시 도시’로 인식되는 것을 우려한다.

런던 브리드 샌프란시스코 시장도 “경찰인력을 증원해야 하지만 현재 경찰력은 1630명을 넘는 수준으로 3년전보다 250명이 적고, 필요한 수보다 540명이 적다”며 “사무실 복귀와 관광객이 증가하면 경찰 인력이 더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 경찰국의 규모와 자금이 늘어날 가능성은 낮다. 시 의회 등에서 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 브리드 시장은 팬데믹 이전보다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가 2배로 증가하고, 교육위원 3명의 소환선거, 좀도둑, 마약, 높은 공실률 등으로 시장직조차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결국 리더십 부재와 정치의 실종, 그리고 경제 상황의 급격한 변화와 기술의 발전. 이 모든 것이 맞물린 모습이 바로 ‘혁신의 루프’가 아닌 ‘도시 공동화의 둠 루프’에 빠진 샌프란시스코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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