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는 무료”… AI가 당신의 집을 학습한다
[AI 시대, 뉴 비즈니스] 시프트
“청소는 무료, 대신 데이터를 주세요” 독일 기업 미국 자회사, 데이터 판매로 수
AI 훈련 데이터 시장·로봇, 폭발적으로 성장 중
일상을 데이터로 바꾸는 기업들… 도어대시 태스크, 머코어 등
더밀크의 시각: AI 경제 새 규칙 ‘일상이 자산’
“띵동~”
초인종 소리에 아파트 문을 열자 흰 유니폼을 입은 청소 담당자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손에는 각종 청소 도구가 들려 있다. 특이한 점은 카메라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
청소 시작과 함께 카메라 녹화 버튼이 눌렸다. 욕실, 주방, 거실을 돌며 바닥을 닦고, 냉장고를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며 쌓인 빨랫감을 정리하는 내내 청소 담당자는 1인칭 시점으로 모든 것을 기록했다. 아파트가 깨끗하게 정리된 후 청구된 청소비는 0원. 영상 녹화 및 사용을 허락한 대가다.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현재 미국 뉴욕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청소는 무료, 대신 데이터를 주세요”
AI 스타트업 시프트(Shift)는 뉴욕시(New York City) 거주자를 대상으로 무료 아파트 청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28일(현지시각) 밝혔다.
무료 청소 서비스의 조건은 단 하나다. 청소 과정 전체를 영상으로 녹화하고, 그 데이터를 AI 로봇 훈련에 활용하는 데 동의하는 것.
청소 담당자들은 머리에 장착된 카메라를 착용하고, 욕실 청소부터 바닥 걸레질, 주방 정리까지 1인칭 시점으로 촬영하며 작업을 수행한다.
청소 과정에서 녹화한 영상은 향후 가정용 청소 로봇 학습에, 그리고 AI 시스템 및 에이전트(agent, 대리인) 학습에 활용된다. 에이전트로 구동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자율적으로 가사 노동을 처리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프트는 무료 청소 서비스와 영상 데이터를 교환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론칭 후 실제 반응도 뜨겁다. 시프트 미국 사업 총괄 해리 킬버그(Harry Kilberg)는 세마포와의 인터뷰에서 “수천, 수천 건의 예약 수요가 몰렸다”고 했다.
독일 기업 미국 자회사, 데이터 판매로 수익… ‘AI 긱워커’ 온다
시프트는 독일 기업 마이크로아지(Microagi)의 미국 법인이다. 마이크로아지는 이미 여러 국가에서 데이터 수집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집된 데이터를 익명화 처리 후 AI 연구소에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진행 중이다. 일부 데이터는 자체 연구소의 내부 연구에도 활용된다.
무료 청소 서비스 비용은 청소 과정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AI 기업에 판매해 충당한다. 킬버그는 더 나아가 시프트가 “AI 경제를 민주화하려 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이웃집을 무료로 청소하며 영상 데이터를 수집해 시프트에 제공하면 보수를 받는 구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마치 우버 드라이버가 자신의 노동력과 차량을 활용해 돈을 버는 것과 비슷하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플랫폼에 제공하는 ‘AI 긱워커(Gig Worker, 초단기 노동 근로자)’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프트는 세계 경제의 심장이자, 청소할 여유가 없는 바쁜 직장인들이 밀집한 뉴욕시를 첫 번째 도시로 선택했다. 향후 더 많은 도시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청소 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한다는 목표다.
‘녹화한 영상’ 개인정보는 어떻게 처리될까?
시프트는 영상 처리 및 라이선싱 전 모든 개인 식별 정보를 익명화한다고 밝혔다. 화면, 신분증, 종이 문서, 휴대폰에 담긴 정보를 흐림 처리해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수집된 영상은 AI 및 로봇 훈련 목적에만 사용되며 대중에게 공개하거나 광고주에게 판매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더 어렵고 지저분한 청소 환경일수록 오히려 AI 학습용 데이터로는 더 유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에이전트, 시스템 기반으로 작동하는 로봇이 실제 현실에서 작업을 수행하려면 더 복잡한 상황, 변수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 데이터 필요… 데이터 가뭄을 극복하라
시프트의 비즈니스 모델이 주목받는 배경엔 로봇 및 AI 업계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 언어 모델은 수십억 개에 달하는 웹페이지 텍스트, 사진으로 학습할 수 있었지만 로봇은 다르기 때문이다.
로봇에게 테이블을 닦는 법을 가르치려면 실제 물리적 상호작용 과정에서 촬영된 시각, 힘, 관절 위치, 모터 명령 등 다차원 센서 데이터가 실시간 동기화된 형태로 필요하다.
모든 유효한 동작 궤적은 실제 하드웨어 위에서 인간 또는 다른 로봇이 개입한 상태로 처음부터 새로 기록돼야 한다. 이런 현실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한 현상을 ‘데이터 가뭄(data drought)’이라고 부른다.
빅테크 기업들 역시 현실 데이터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구글 로보틱스팀이 2022년 RT-1 모델을 훈련시키기 위해 오피스 주방에서 13대의 로봇을 17개월간 가동해 700가지 이상 과제를 포함한 13만 개의 동작 궤적 데이터를 수집한 게 대표적 사례다.
현재까지 구축된 최대 규모의 크로스 기관 오픈 데이터셋인 오픈 X-임바디먼트(Open X-Embodiment)는 21개 기관, 34개 연구소의 60개 데이터셋을 통합해 22종 로봇에 걸쳐 약 100만 건의 궤적을 확보했다.
그러나 언어 모델 학습 데이터가 통상 15억~45억 건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이 수치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전문 청소 담당자를 고용하는 데 비용이 들더라도 학습용 실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더 이익이 되는 시대가 왔다.
AI 훈련 데이터 시장·로봇, 폭발적으로 성장 중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AI 훈련 데이터셋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31억9500만달러(약 4조 8000억원)로 추산된다. 2033년엔 163억2000만달러(약 24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22.6%의 높은 성장률이다.
로봇 AI의 한 축인 ‘임바디드 AI(Embodied AI, 체화 지능: 몸을 가진 AI를 지칭)’ 시장은 더욱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2025년 44억달러(약 6조6000억원) 수준이던 시장 규모는 2030년 230억6000만달러(약 34조7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성장률은 39%에 달한다.
글로벌 로보틱스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실리콘밸리 로보틱스 센터에 따르면 2026년 380억달러(약 57조3000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34% 성장하며 지난 10년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2025년 한 해에만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 60억달러(약 9조원) 이상의 투자가 이뤄졌다.
일상을 데이터로 바꾸는 기업들… 도어대시 태스크, 머코어 등
일상 공간에서 AI 훈련용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시도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미국 배달 앱 도어대시(DoorDash)는 지난 3월 ‘태스크(Tasks)’라는 별도 앱을 출시해 800만 명에 달하는 자사 배달 기사들에게 바디 카메라를 착용하고 설거지, 빨래 개기, 침대 정리 등을 촬영하도록 했다. 음식 배달 개선이 아니라 인간형 로봇 훈련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 인재를 AI 훈련에 연결하는 ‘머코어(Mercor)’도 비슷한 흐름에 속한다. 브랜던 푸디(Brendan Foody) 머코어 CEO는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AI 에이전트를 훈련시키는 일이 세계에서 가장 큰 일자리 카테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머커가 모집하는 AI 훈련 관련 직종의 평균 시급은 105달러(약 16만원)에 달한다. 정신과 전문의 같은 고도 전문직은 시간당 최대 350달러(약 53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의사·변호사가 AI 과외를? 2년 만에 ‘14조원 기업’ 만든 22세 CEO의 비밀
머코어(Mercor) 외에도 스케일 AI(Scale AI), 서지(Surge), 마이크로1(Micro1) 같은 기업들은 AI 라벨링 및 훈련 데이터 공급 시장을 장악하며 오픈AI, 앤트로픽, 메타, 구글 등 주요 AI 기업들의 필수 파트너가 되고 있다.
크리스틴 크루즈베르가라 핸드셰이크 최고 교육 전략 책임자는 C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거대 언어 모델들이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데이터를 이미 소화했다”며 “이제는 더 세밀한 파인튜닝(미세조정)과 강화 학습을 위한 새로운 종류의 데이터가 필요한 단계에 왔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로보틱스 업계의 패러다임 역시 시뮬레이션 데이터에서 실세계 데이터셋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험실에서 작동하는 로봇과 현실에서 작동하는 로봇의 차이를 결정짓는 핵심이 모델 아키텍처보다 데이터의 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더밀크는 올해 1월 구글 딥마인드 출신 앤디 정 제너럴리스트 공동창업자 인터뷰를 통해 이런 변화의 시그널을 예고한 바 있다.
더밀크의 시각: AI 경제 새 규칙 ‘일상이 자산’
시프트 사례는 AI 경제의 새로운 논리를 드러낸다. 사람들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청소 행위, 손의 움직임, 물건을 집고 놓는 동작, 이 모든 것이 로봇 기업들의 값진 자산이 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사용자의 관심을 광고 수익으로 전환하던 ‘주의 경제(attention economy)’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공간 자체가 AI 학습 재료가 되는 ‘데이터 행동 경제(behavioral data economy)’로의 전환으로 볼 수도 있다. 청소비가 0원인 이유는 데이터로 지불했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트렌드는 한국 기업과 정책 당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가장 중요한 건 AI 학습 데이터 수집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이다. 시프트의 사례처럼 ‘서비스 무료화 + 데이터 수익화’ 모델은 가사, 물류, 헬스케어 등 로봇 자동화가 가능한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국내 기업, 로봇 스타트업들도 이런 변화의 시그널을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로봇 훈련 데이터 확보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 LG, 현대차, 두산로보틱스 등 국내 대기업들이 가정용·서비스용 로봇 시장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고품질 실세계 데이터 확보 전략은 기술 격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데이터 주권과 개인정보 보호 제도 정비도 중요하다.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주거 공간까지 파고드는 AI 훈련 데이터 수집은 개인정보 동의 범위, 익명화 기준과 안전성 확보, 데이터 재활용 제한 등 새로운 규제 영역을 요구한다. 이런 새로운 데이터 수집 방식에 어떻게 대응할지 국내 개인정보보호법 체계 관점의 논의가 필요하다.
시프트 사례는 AI 훈련 데이터 시장이 인터넷 공간을 넘어 물리적 세계로 확장되는 중요한 신호탄이다. 청소를 넘어 요리, 육아, 의료 보조, 물류 등 다양한 생활 서비스 영역에서 ‘무료 서비스 + 데이터 수익화’ 모델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AI 시대의 경제 도래에 대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