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이메일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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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2021.03.30 12:10 PDT
[새책] 이메일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이메일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출처 : 셔터스톡)

생산성 분야 구루 칼 뉴포트 교수의 새 책
이메일, 일에 대한 집중 어렵게 해
이메일 없이 일하는 연구에 박차 가해야

이메일이 처음 개발됐을 때 사람들은 믿기지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메일을 보낸 뒤 진짜 잘 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료 자리에 찾아가 보곤 했다. 하지만 일단 메일이 잘 간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점점 더 많은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직접 대화나 전화 메시지, 메모보다 빠르고 편한 덕분이다. 1980년대 초반에 IBM이 본사에 처음 이메일을 도입했을 때는 며칠 만에 사용 예상치를 5~6배 뛰어넘을 정도로 많이 보내는 바람에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후 간단한 대화는 메일로 대체됐다. 3명 이상의 대화에는 ‘참조’ 기능이 이용됐다. 전체 메일이 난무했고, 휴가 때 자동 답장 기능도 나왔다. 이메일은 이렇듯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일하는 시간의 3분의 1을 이메일 확인과 답장에 쓰고 평균적으로 6분에 한 번 메일을 확인한다.

하지만 동시에 읽지 않는 메일도 늘어만 간다. 스팸 메일이 넘쳐나고 가입한 메일 구독 서비스는 많지만 조금만 바빠지면 안 읽은 채로 메일함에 쌓여간다. 메일 확인은 지겹고 귀찮은 일이 됐다. 동시에 확인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이메일은 일종의 굴레가 됐다. 편리함을 가져다 줬지만 동시에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메일의 가장 큰 폐해는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슬랙과 같은 메신저 기반 기업 업무용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일을 직접 하게 만들기보다는 자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메일의 폐해에 대한 약간은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나왔다. 바로 <A World Without Email: Reimagining Work in an Age of Communication Overload(이메일 없는 세상: 커뮤니케이션 과부하의 시대에 일하는 방식에 대한 재고>. 생산성 분야의 구루이자 <딥워크>와 <디지털 미니멀리즘> 등을 쓴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칼 뉴포트 교수의 신간이다. 책을 읽어 보면 이메일을 완전히 없애기보다는 줄여야 한다는 취지지만 이메일이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을 낮추고 있다는 지적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이메일의 폐해에 대해 서술했고 2부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다뤘다. 책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

A World Without Email 책 표지 (출처 : calnewport.com)

이메일의 노예가 된 사무직

2017년 초 프랑스에서는 일명 ‘연락을 끊을 권리’ 법이 시행됐다. 5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은 퇴근 후 직원들과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직원들과 미리 원칙을 정해야 한다는 법이었다. 저녁과 주말에 메일을 주고받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법 자체의 실효성에는 의문이 있지만, 직원들이 퇴근 후에도 이메일의 노예가 되고 있는 글로벌한 문제점에 대처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메일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연구진은 40명에게 심박수를 모니터하는 장치를 달고 12일 동안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심박수는 스트레스 레벨을 알려주는 바로미터다. 연구진은 동시에 이들 40명의 컴퓨터 사용도 모니터했다. 컴퓨터 사용 시간은 이메일 작업 시간과 비례한다. 시간별로 컴퓨터 사용과 심박수 모니터를 했는데 이메일 사용이 많으면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77번 이메일을 확인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열 감지 카메라를 컴퓨터 모니터에 달아 놓은 실험도 있었는데 결과는 비슷했다.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열 받는’ 일이 많았다는 얘기다. 여기서 열은 ‘심리적 고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구진은 기업이 이메일 소통을 줄이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빠르고 효율적이어서 최고의 소통 수단으로 일컬어지는 이메일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역설적으로 빠르게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너무 빨라서 사람들이 메일을 너무 많이, 자주 보내기 때문이다. 뭔가에 집중할 여유가 생기기도 전에 새로운 메일이 오가기 때문이다. 도입부에 언급한 IBM 얘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진정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메일이 잘 오지 않는 아침 일찍이나 밤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게다가 새로운 메일을 확인하지 않으면 뭔가 찝찝한 느낌을 갖게 되는 인간의 본성도 이메일 문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인간은 작은 그룹 속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사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누군가의 부름이나 요청에 답하지 못하면 ‘반사회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래서 이메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가 너무 자주 이메일을 확인하는 건 이러한 진화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얘기다. 사실은 그렇게 자주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빨리 답장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뉴포트 교수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하이퍼액티브 하이브 마인드(Hyperactive Hive Mind)’를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메일이나 협업 소프트웨어를 통해 중구난방으로 메시지가 오고 가는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의 흐름을 말한다. 이러한 일의 방식은 생산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이메일은 일을 돕는 도구일 뿐이다. 실질적인 일은 아니다. 그런 이메일에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다.

칼 뉴포트 교수 (출처 : calnewport.com)

헨리 포드를 따르고 피터 드러커를 (조금은) 무시해야

이런 폐해가 있는 이메일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해 자동차를 대량생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위해 제품을 표준화했고, 부품을 단순화했으며 조립 작업을 전문화했다. 이러한 방식은 생산성을 엄청나게 높였고 현대적인 공장 대량생산 방식의 기초가 됐다. 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건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포드가 얼마나 다양한 시도를 했고, 실험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실패했는지다.

뉴포트 교수는 제조업 생산성을 급격하게 높인 이러한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사무실 안의 지식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해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생산직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상대적으로 사무직의 생산성은 그리 높아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사무직에도 다양한 방식을 적용해본 뒤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더 높은 생산성을 가져오는지를 연구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뉴포트 교수는 또 지식 근로자들에게 일하는 방식의 자율성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 경영사상가 피터 드러커의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지식 근로자들이 각자 나름대로 일하는 방식이 있고 이를 존중해줘야 하는 건 맞지만, 이메일과 협업 툴이 일반화된 이후 이들이 일에 접근하는 방식은 체계적이지 못하게 됐다. 앞서 언급한 하이퍼액티브 하이브 마인드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과정에서 협업이 대세가 된 지금은 일의 조정과 협조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기업이 직원들의 일을 조정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 관여를 해야 한다.

실제로 생산성을 낮추는 이메일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옵티마이즈(Optimize)라는 미디어 기업은 메일을 통해 일을 하지 않고 모두가 스프레드 시트를 보고 일을 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스프레드 시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나와 있고 그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 기업은 슬랙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일상적으로 쓰지는 않는다. 다만 좋은 결과가 있을 때 이를 공유하고 회의를 잡을 때만 사용한다. 그래서 직원들은 슬랙을 하루에 한두 번만 들여다 봐도 된다.

아리아나 허핑턴이 만든 스라이브 글로벌(Thrive Global)이라는 기업은 휴가 간 직원의 이메일 자동답장 기능을 없앴다. 대신 휴가 간 직원에게 메일이 오면 자동적으로 삭제한다. 직원은 휴가를 다녀온 뒤 산더미처럼 쌓인 메일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이 밖에도 개인 메일을 없애고 팀 메일을 도입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메일 하나에 5문장 이상 쓰지 못하도록 장려하기도 한다. 독일의 한 스타트업은 하루 4시간만 근무를 하는 대신 근무 시간에는 직접적인 일 이외에는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뉴포트 교수는 메일을 없애는 대신 대학교수처럼 직원들이 매주 시간을 정해 면담을 하는 ‘오피스 아워’를 도입하는 방법도 있다고 소개했다. 모두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방식들이라고 볼 수 있다.

더밀크의 생각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첨단 기술의 도입을 반대하는 네오러다이트(Neo Luddite) 운동의 일환이 아니다. 이메일은 엄청난 발명이었고 여전히 편리함을 준다. 하지만 이메일을 통해 일하는 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뉴포트 교수의 생각이다.

뉴포트 교수가 지적한 이메일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그가 언급한 이메일을 줄이는 방식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과연 기업이 이메일 없이 굴러갈 수 있을까.

다만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실제로 생산성을 확실하게 높이는 방식이 개발된다면 그 방식은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이 될 것이라는 뉴포트 교수의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 방식을 실제로 개발하는 사람은 헨리 포드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추앙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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