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조원 메가프로젝트 대해부… 한국은 ‘지능 주권’을 가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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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권 2026.07.05 00:49 PDT
5000조원 메가프로젝트 대해부… 한국은 ‘지능 주권’을 가질 수 있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경남 진주 경상국립대에서 열린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에서 5년 내 ‘피지컬 AI 1강, 로봇 글로벌 3강’ 실현을 목표로 영남권 제조업의 대전환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출처 : 청와대 자료 사진)

[집중분석] ④ 한국의 산업지도가 바뀐다
-3대 프로젝트에 후속 계획까지 약 5000조원 육박. 유사이래 최대 규모
-신규 투자는 23%. 나머지는 기준 투자의 가속·재확인
-호남에 메모리팹 갔지만 피지컬 AI, 우주·국방 AI 등 미래 인프라는 영남에 집중.
-가장 큰 병목은 전력... 향후 원전 10기 안팎 지어야

3대 메가프로젝트(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는 지방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의 최종 승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적 결단입니다. 국토 전체를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탈바꿈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 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결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부가 최근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 "대한민국이 초격차 산업강국으로 우뚝 서는 세 번째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발표가 '대한민국 미래 30년을 책임질' 계획이라고 의미부여했다. 실제 약 5000조원에 달하는 투자는 한국 연간 GDP(약 2,500조)의 두 배다. 한국이 1년에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약 2년 치 모아야 나오는 금액을, 주요 대기업들이 10여 년에 걸쳐 첨단산업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번 발표는 지난 6월 29일 국민보고회를 시작으로 7월 초까지 전국 권역을 돌며 이어졌다. 삼성그룹이 약 2,655조원, SK 2,100조원 투자로 문을 연 발표는 호남과 충청을 거쳐 지난 7월 3일 진주 영남권 보고회에서 한화 55조원, 현대차 42조원, 두산 5조1,000억원, LG 9조4,000억원 등이 더해지며 마무리됐다.

약 5000조원에 달하는 규모는 미국 연간 GDP(30.8조달러)의 약 12%, 중국 연간 GDP(19.6조달러)의 약 19%에 해당한다. 미국·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의 경제 규모에 견주면 10~20% 수준이지만 자국 경제 규모로 보면 GDP의 두 배를 AI 기반 첨단산업에 거는 셈이다.

이번에 발표된 투자 액수를 향후 10년으로 나눠도 연간 약 500조원이 투자된다. 올해 정부 예산(약 728조)의 3분의 2가 넘는 돈이 매년, 민간에서 첨단산업에만 투입된다는 뜻이다. 한국의 연간 설비투자 규모가 대략 200조~250조원 규모임을 감안하면 연 500조라는 계획액은 현재 나라 전체 설비투자의 두 배를 웃도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그야말로 '올인'이다.

3대 메가 프로젝트 등 소위 '메가 코리아' 계획은 향후 대한민국의 산업지도를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더밀크는 이번 프로젝트의 모든 것을 해부, 대한민국의 경제 산업이 어디로 흘러갈지,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집중 분석한다.

이재용 삼성 회장, 최태원 SK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의 주요 발언 (출처 : 더밀크)

5000조원, 모두 신규 투자는 아니다

이번 발표에서 청와대와, 지자체 및 각 그룹의 투자 총액과 권역별 투자액을 뒤섞어 하나의 거대한 숫자로 읽으면 실제 규모를 과대평가하게 된다. 조사결과, 이번 발표의 상당 부분은 기존 로드맵의 가속이며 발표의 형식이 정치적 성격을 갖다 보니 지역별로 쪼개져서 진짜 숫자는 가려져 있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약 5000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액이 모두 '신규'가 아니다. 총액의 상당 부분은 이미 있던 계획을 앞당기거나 재확인한 것이다.

실제 삼성이 밝힌 투자금액 2,655조 가운데 2,030조가 평택과 용인 클러스터 몫인데, 이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진행돼 온 사업이다. 그렇다고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발표의 실질적 변화는 ‘새로운 숫자’보다 ‘앞당겨진 시간표’에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용인 6번째 팹의 준공 시점을 2042년에서 2035년으로 7년 앞당기기로 했고, SK하이닉스는 용인 4번째 팹 완공을 2045년에서 2033년으로 12년 당긴다.

SK가 약속한 반도체 투자 1,100조 역시 용인 600조원과 청주 100조원 투자가 기존 거점의 확장에 해당한다. 현대차의 새만금 9조와 영남 42조도 지난해 발표한 125조원 규모 국내 중장기 투자 계획의 일부다. 하지만 완공을 7년, 12년 앞당긴다는 것은 수요를 그만큼 절박하게 본다는 뜻이다.

메카 프로젝트, 어디에 투자하나? (출처 : 더밀크 (각사 발표자료 종합))

신규 투자 1150조원은 어디로 가나: 부품에서 지능으로

이번에 발표된 약 5,000조원의 투자 계획 중 새로 결정된 신규 투자는 약 23%인 1,150조원이다. 나머지 약 77%는 평택, 용인 등 기존 계획의 가속·재확인분이다.

신규 투자 발표는 주로 수도권 바깥의 새 거점과 새로운 산업 영역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삼성은 호남 425조, 충청 140조, 영남 60조를 합한 625조원을 신규투자 한다. SK는 서남권 클러스터 400조가 새 거점이다. 이 신규 항목 안에는 방향이 분명한 투자들이 있다. 삼성이 온양과 천안에 짓는 56조원 규모 HBM 팹, SK하이닉스가 청주 M17 낸드에 넣는 80조원과 첨단 패키징 P&T7의 20조원 투자 등이다.

다만 신규 항목 중 가장 큰 삼성 광주 400조와 SK 서남권 400조는 아직 부지도 확정되지 않았고 이사회 승인과 수요에 따라 규모와 일정이 달라질 수 있다.

이번에 가장 두드러진 새 투자 영역은 한화그룹이 밝힌 우주와 국방이다. 한화는 55조원을 우주 주권과 자주국방이라는 두 축에 건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독자 발사체에 약 23조원, 한화시스템이 초저궤도 SAR 위성과 우주 AI 데이터센터, 위성통신망에 약 20조원을 투자한다. 여기에 경남 창원에 세울 국방 AI 데이터센터에 10조원 이상, 한반도 작전 환경에 특화된 국방 AI 모델 디펜스(Defense)OS 개발에 2040년까지 약 2조원을 투입한다.

통합 우주 인프라는 고도 350km의 관측위성군, 400km 상공의 우주 AI 데이터센터, 900km의 저궤도 위성통신망으로 구성되는데, 한화시스템은 2031년까지 SAR 위성 64기를, 한국판 스타링크로 불리는 저궤도 통신망에 192기와 추가 60기 이상을 발사할 계획이다. LG도 2030년까지 영남에 9조4,000억원을 넣어 LG이노텍의 반도체 기판 생산능력을 키운다.

주목할 것은 이 신규 투자의 성격이 단순 증설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삼성SDS가 해남에 짓는 210MW 소버린 AI 데이터센터, 구미의 휴머노이드 양산라인, 현대차가 새만금에 GPU 5만 장급으로 짓는 AI 데이터센터, 그리고 한화의 우주와 국방 AI는 모두 메모리 부품을 넘어 AI 인프라와 피지컬AI, 나아가 우주와 안보로 뻗는 시도다.

이번 발표의 하이라이트는 여기에 있다. 그동안 한국은 남이 설계한 지능을 작동시키는 핵심 부품, 특히 메모리를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나라였다. 하지만 이번 신규 투자의 무게중심은 부품을 넘어 '지능' 그 자체로 옮겨가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소버린 AI 데이터센터는 한국이 통제하는 연산 기반을 겨냥하고 피지컬AI와 휴머노이드는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자국의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이며 국방 AI와 독자 발사체는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빌릴 수 없는 안보의 영역이다. 부품에서 지능으로, 지능에서 주권으로 축의 이동이다.

물론 이 계획은 아직 선언에 가깝다. 광주 400조와 서남권 400조가 부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것처럼, 지능과 주권을 향한 투자의 상당수도 청사진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향의 전환은 분명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이 사상 최대의 자본을 걸며 던진 질문은 더 이상 '얼마나 잘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스스로 소유할 것인가'로 바뀌었다. 이 신규 투자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결국 이 질문에 얼마나 정직하게 답하느냐에 달려 있다.

향후 10년간 바뀔 대한민국의 산업지도 (출처 : 더밀크 (각사 발표 종합))

누가 돈을 대나: 기업 자본, 파트너, 정책금융

이번 발표에서 자세히 들여다봐야할 부분은 자기 재무제표로 감당하는 돈이 아니라 외부에서 끌어와야 할 금액이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SK그룹의 2,100조원 투자는 SK하이닉스 반도체 1,100조와 전국 15기가와트(GW) AI 데이터센터 약 1,000조로 나뉘는데, 데이터센터 1,000조의 재원을 SK는 전략적 파트너 투자, 고객사 입주 계약,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조달하겠다고 명시했다.

SK 자체 설비투자가 아니라 파트너 자금과 고객 선계약, 부채를 포함한 동원 자본의 총합이라는 뜻이다. 실제 SK텔레콤은 울산 데이터센터를 AWS와 함께 짓고 엔비디아와 AI 팩토리를 공동 구축한다. 현대차도 산업은행과 국민성장펀드 참여를 검토하며, 약 175조원의 차입 부담과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 탓에 자체 현금만으로 감당하기보다 정책 금융과 외부 자산을 활용하기로 했다.

한화의 우주와 국방은 조달의 성격이 또 다르다. 발사체와 위성, 국방 AI는 민간 시장 수요가 아니라 상당 부분 정부의 공공 수요와 국방 예산, 정책 금융에 의존한다.

정부가 우주항공과 방산 기업을 글로벌 앵커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공공 수요 창출과 연구개발, 정책 금융을 전방위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자기 자본으로 짓는 팹과 파트너와 부채, 정책 금융과 공공 예산으로 짓는 공장은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데이터센터·발사체는 사이클이 꺾이거나 예산이 조정될 때 충격의 경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갑자기 사이클이 꺾이거나 전환되면 자기 자본으로 짓는 팹은 기업이 손실을 직접 떠안지만, 파트너나 정책자금, 공공 예산으로 지으면 그 부담이 채권자, 국가 재정과 납세자에게로 번진다. 5,000조라는 총액이 마치 기업들이 스스로 마련한 돈처럼 읽히지만, 실제로는 상당 부분이 외부에서 끌어와야 할 자본이고, 그 조달이 예정대로 이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주요 그룹 신규 투자1148조원 현황 (출처 : 더밀크 (각사 발표 종합))

2030·2035년 산업지도: 국토는 어떻게 바뀌나

만약 5000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액이 예정대로 집행된다면, 한국의 첨단산업 지도는 두 단계에 걸쳐 바뀐다.

2030년 무렵까지는 이미 착공했거나 일정이 확정된 프로젝트들이 윤곽을 드러낸다.

충청권에서는 SK하이닉스 청주 P&T7 첨단 패키징이 2027년 말, M17 낸드 팹이 2029년 상반기에 가동하고, 삼성 온양과 천안 HBM 팹이 이 시기 생산능력 확충의 축이 된다.

호남권에서는 삼성 해남 소버린 AI 데이터센터가 2028년, 현대차 새만금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클러스터가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영남권에서는 SK텔레콤과 AWS의 울산 데이터센터가 2027년 하반기에 돌아가고, 한화의 창원 국방 AI 데이터센터가 45메가와트(MW)로 가동을 시작한다. 한화시스템의 SAR 위성망은 2031년까지 64기 발사를 목표로 한다.

2035년까지는 대형 클러스터들이 완성 단계에 접어든다.

SK하이닉스 용인 4번째 팹이 2033년, 삼성 용인 6번째 팹이 2035년에 준공되며 수도권 남부가 세계 최대 규모의 D램과 HBM 생산 거점으로 굳는다. SK의 15GW 데이터센터 중 추가 10GW가 이 시기에 확대되고, 삼성 광주 400조와 SK 서남권 400조로 조성되는 서남권 메모리 클러스터가 본격 건설에 들어간다. 한국형 저궤도 위성통신망도 정부 목표상 2035년 완성을 겨눈다.

지역별로 보면 지도는 이렇게 재편된다. 수도권과 경기 남부의 기흥, 화성, 평택, 용인은 여전히 중심축으로 남되 용인 완공이 당겨지며 무게가 더해진다.

충청권의 천안, 온양, 아산, 청주, 세종은 HBM과 낸드, 첨단 패키징, 디스플레이, AI 서버용 기판을 아우르는 소재부품 벨트로 부상한다.

호남과 서남권의 광주, 해남, 전북 새만금은 지금까지 반도체 지도에 거의 없던 신규 축으로, 메모리 팹과 소버린 AI 데이터센터, 현대차의 로봇과 수소 거점이 함께 들어선다.

영남권은 두 겹으로 재편된다. 구미와 부산, 울산, 대구를 잇는 축은 휴머노이드와 피지컬AI, 기판과 배터리, 미래차의 제조 AI 벨트가 된다.

창원과 사천, 진주를 잇는 남해안은 발사체와 위성, 국방 AI를 아우르는 우주항공·방산 벨트가 된다. 정부가 남해안 우주항공 벨트 조성을 공식화한 것이 이 축을 뒷받침한다. 수도권에 집중됐던 첨단 제조가 충청을 거쳐 호남과 영남으로 넓어지고, 영남 남해안에 우주라는 새 층이 얹히는 것이 이 계획들의 공통된 방향이다.

이 지도가 완성된다면, 그 의미는 단순히 공장이 지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넘어선다. 지난 반세기 한국의 산업지도는 수도권과 동남권 임해공업지대라는 두 축으로 굳어 있었다. 반도체는 경기 남부에, 중화학과 조선은 울산·거제에 몰렸고, 그사이 호남은 첨단 제조의 변방에 머물렀다.

메가 프로젝트 완성 연도별 타임라인 (출처 : 더밀크 (각사 발표 종합))

이번 계획은 그 반세기의 구도를 다시 그린다.

충청이 소재부품의 허리로 두터워지고, 호남이 메모리와 AI 데이터센터라는 첨단의 새 축으로 편입되며, 영남이 기존 제조 위에 우주와 국방이라는 층을 얹는다. 국토의 첨단 역량이 한 극에서 여러 극으로 분산되는, 산업지리의 재편이다.

그러나 이 지도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각 권역이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밸류체인의 어느 높이에 올라서느냐가 중요하다.

지도의 대부분은 여전히 그릇, 곧 메모리 팹과 데이터센터라는 물리적 생산 기반이다. 그러나 그 위에 소버린 AI 데이터센터(해남), 국방 AI와 독자 위성망(창원·사천), 피지컬AI와 휴머노이드(구미), 자율주행 데이터(새만금)라는, 지능과 주권의 층을 겨냥한 거점들이 처음으로 지도에 표시됐다. 한국의 산업지도가 부품을 만드는 지도에서, 지능을 생산하고 소유하려는 지도로 성격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2030년과 2035년의 이 지도가 한국을 부품 강국의 확장으로 남길지, 지능 산업의 설계자로 올려놓을지는, 지리적 다극화가 아니라 그 위에 얹힌 지능의 층이 얼마나 실제로 자라느냐에 달려 있다.

SK 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출처 : SK 하이닉스)

가장 큰 병목은 전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각 대기업의 투자 약속에 화답하며 "청와대 안에 이 사업에 대한 직접, 직할 담당관을 두고 3대 메가프로젝트를 제가 직접 챙기고 신속하게 집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력·용수·부지 등 첨단산업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뒷받침하고, 지역별 전기요금제와 AI 데이터센터 전용 요금제 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이다. SK는 전국에 15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했다.15GW는 원전 10기에 맞먹는 규모다. SK가 밝힌 계획대로 하려면 산술적으로 원전 10개를 새로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삼성 해남 210MW, 현대차 새만금 100MW에서 500MW, 그리고 한화가 창원에 짓는 국방 AI 데이터센터가 올해 45MW에서 2032년 135MW로 확장되는 규모가 더해진다.

세 그룹 이상의 발표가 하나같이 태양광과 수소, 원전 기반 수소, SMR 같은 발전 사업을 데이터센터, 팹과 묶어 내놨다. 전력이 이 모든 계획의 실질적 병목이라는 점을 각 기업이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력과 용수, 송변전망, 부지, 인허가, 인력은 대부분 정부와 지자체의 몫이다. 그만큼 프로젝트의 성패가 공공 인프라의 집행 속도에 묶이는 것이 사실이다. '에너지' 수급이 차질을 빚으면 그만큼 공정도 늦어진다.

에너지 수급 차질로 계획 전체가 좌초된 사례가 있다. SK그룹이 지난 2020년 발표했던 새만금 데이터센터 계획이 345kV 송변전 설비 지연으로 사실상 무산된 바 있다. 이는 '리스크'가 추상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주와 방산 영역은 여기에 더해 정부의 공공 수요 자체가 사업의 전제다. 국가 의존도가 다른 영역보다 구조적으로 높다는 리스크가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강한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해묵은 숙제들과 지역 갈등, 각 이익 집단의 요구가 산적해 있는 것도 리스크다.

이재명 대통령(사진 가운데)과 최태원 회장, 이재용 회장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대회에서 발표한 후 손을 맞잡고 있다 (출처 : 청와대)

더밀크의 판단 : 5,000조원 투자의 정당성, 질문을 다시하라

50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투자금액. 과연 어떤 가치를 두고 있을까? 정당하고 필요한 규모의 투자일까? 버블을 부르는 과잉 투자금액인가?

숫자만 보면 과잉투자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 GDP의 두 배를 첨단산업에 거는 것은 슈퍼사이클 정점에서의 베팅이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또 이번에 발표된 투자액 대부분은 기존 계획의 가속이고 신규 금액은 확정 전이며 데이터센터와 우주 항공 등은 남의 자본과 국가 재정에 기대고 있다. 순수한 산업 논리, 곧 수익률과 사이클만으로 따지면 이 규모는 정당화하기 어렵다.

👉한국은 AI의 비싼 '주유소'...'공급자'를 넘어 'AI공동설계자'로 올라서야

그러나 이제 AI 투자는 산업 논리로만 재단할 대상이 아니다. 지금 세계는 지능이 곧 국력이 되는 국면에 진입했고, 주요국은 이미 AI를 무역이 아니라 안보의 언어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2022년 이후 엔비디아 최첨단 칩의 대중 수출을 단계적으로 틀어막아 왔고, 2026년 4월에는 중국 특화 사양인 H20까지 금지하며 통제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6월에는 AI를 국가안보 의제로 재편하는 행정명령을 내려, 프런티어 모델을 공개 전 정부가 검토하는 절차까지 만들었다.

중국 시진핑은 반도체와 AI에서 '자립자강'과 '자주가능'한 생태계 구축을 국가 총력 과제로 못 박았다.

화웨이를 축으로 엔비디아를 대체하는 독자 칩 생태계를 밀어붙였다. 국가 반도체 펀드 3기에 470억달러 이상을 투입했고, AI 데이터센터망을 80% 국산 실리콘으로 채우는 2,950억달러 규모 계획까지 추진한다. 성능은 아직 뒤지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지능의 전 계층을 스스로 소유하겠다는 것이다.

유럽도 규제자에서 투자자로 돌아섰다. EU는 인베스트AI 계획을 세웠다. 약 2,000억유로를 동원해 조 단위 파라미터 모델을 학습할 AI 기가팩토리 4~5곳을 세우고, 각 시설에 최첨단 AI 칩 10만 장 이상을 배치할 예정이다. 프런티어 모델이 미국과 중국의 소수 연구소에 집중된 현실에서, 데이터 주권과 AI 자립을 확보하려는 셍존 차원의 대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대국 틈새에 끼어 있는 한국이 '지능 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안보적 종속에 놓이게 된다. 지능을 남에게 빌려 쓰는 나라는 평시에는 비용을 더 낼 뿐이지만, 위기에는 판단과 방어의 스위치를 남의 손에 맡기는 꼴이다. 이번 발표에서 소버린 AI 데이터센터, 국방 AI 모델(Defense OS), 독자 발사체와 위성망이 나란히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투자의 본질은 반도체 증설이 아니라, 미·중·유럽이 저마다 벌이는 지능 주권 경쟁에 한국이 뒤늦게, 그러나 자기 방식으로 뛰어든 것이다.

때문에 5,000조원의 승산은 이 지렛대를 지능의 층으로 환산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메모리'라는 병목을 쥔 나라가 자기 지능까지 갖추면 대체 불가능한 위치에 선다. 그러나 부품 제조국에만 머물고 지능은 남에게 계속 빌리면 하도급 부품 공장에 머문다.

하지만 지능 주권 확보라는 명분이 모든 규모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은 D램을 국가 전략으로 규정한 순간 도덕적 해이와 정점의 과잉 증설로 무너졌고, 중국도 자립의 이름으로 화웨이에 자원을 몰아주지만 성능은 여전히 엔비디아에 뒤진다. 주권이 곧 효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5,000조원 투자가 비효율적 증설과 정치적 배분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면, 그것은 안보 자산이 아니라 다음 사이클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주권이라는 명분이 정점의 과잉 증설과 도덕적 해이를 가리는 방패가 되지 않도록, 사이클을 견디는 자본 구조와 냉정한 선택이 뒷받침돼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투자는 기존 산업의 시각으로 보면 과하고 위험하지만, 지정학적으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 정당성은 5,000조원을 지능 주권확보에 제대로, 그리고 규율 있게 쓰였느냐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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