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허리 휘었다... 물가인상으로 월 30만원 더써. 애틀랜타 가장 올라
인플레이션 때문에 ...미국 가정 월 250불 추가 지출
한국 그로서리 업계 "쌀, 육류 다 올라 ... 공급망 탓"
애틀랜타, 지난해 물가 9.8% 상승, 대도시들 중 '톱'
미국의 물가가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월 중 발표된 인플레이션 관련 지표가 모두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과 비교해 7.5%나 상승했다. 이는 작년 12월 7% 상승보다도 높고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월 1.8%와 비교해서는 6% 가까이 오른 수치다. CPI는 1982년 2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1982년 1월 CPI는 8.3%였다.
인플레이션이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는 지표는 또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미 노동부는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9.7%나 상승했다. 전월 대비로는 1.0% 올랐다. 전월대비 상승률은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망치 0.5%의 두 배에 달한다고 CNBC는 전했다.
소비자물가지수가 소비자의 구매력을 가늠하는 지수라면, 생산자물가지수는 생산원가와 관련이 있다. 기업의 비용 증가를 가늠하는 지표다. 이 때문에 2월 중 발표된 CPI와 PPI 지수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충분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오는 3월을 시작으로 1년 내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연준은 오는 3월 다소 공격적인 0.5% 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인플레 때문에 ... 미국 가정 월 250달러씩 더 쓴다
항목별로 보면 1월 중고차 가격은 1년 전보다 40.5% 상승하면서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을 주도했다.
식품 가격은 7% 급등하면서 1981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식당 가격은 1980년대 초반 이후 가장 많이 상승했다. 특히 패스트푸드 가격이 1년 전과 비교해 8%나 올랐다. 육류와 계란 가격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면서 식료품 가격이 7.4% 상승했다.
실제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이 미국인들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난 10일 마켓워치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분석을 인용, "45~54세 미국인이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전했다.
미국 평균 가구의 추가 지출은 월 250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이 연령대의 미국인은 월평균 305달러를 더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평균을 55달러나 웃도는 수치다. WSJ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인 가정에서 월 276달러를 더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분석을 수행한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라이언 스윗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미국인들이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밀레니얼과 히스패닉 계층, 그리고 중산층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 상승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 가구는 교통비 측면에서 저소득 계층과 고소득 계층에 비해 많은 비용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 가구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중고차 구입 비중이 높고, 개스비 지출이 더 많다는 것이다. 특히 히스패닉 계층은 중고 자동차와 개스비 지출 측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고소득 가구는 외식이나 레크리에이션 지출이 다른 계층과 비교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에 따르면 이 계층은 평균적으로 다른 소득 그룹과 비교해 18세 미만 자녀가 더 많기 때문에 교육에 더 많은 지출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35~44세 연령층은 지난해 비용이 6.9% 비용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로서리 업계 "공급망 문제... 가격 계속 오른다"
실제 미국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어느정도로 올랐을까. 조지아주의 아시안 마트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물가 상승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 전역에 지점을 둔 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1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식료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다 올랐다. 문제는 여전히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중 쌀 15파운드 가격은 10.99달러에 판매됐다. 지금은 13.99달러까지 3달러 이상 오른 가격에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또 육류 가격도 미친 듯이 오르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LA갈비 가격은 파운드 당 11.99달러에서 현재 15.9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또 다른 아시안 마트의 한국인 관계자도 본지에 "일주일이 한 번 정도 벤더로부터 물건을 받는다. 받을 때마다 물건 가격이 오르고 있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가 오름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작년 1월 대비로는 전반적인 식료품 가격이 40~50% 가까이 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물가 상승세는 공급망 이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공장에서 쌀을 공급받는데, 너무 물량이 딸린다"며 "코로나로 인해서 사람이 없어서 포장을 못한다고 하더라. 오뚜기 진라면의 경우 베트남에서 생산이 이뤄지는데, 컨테이너로 주문을 해도 물건을 못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식료품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물류비 상승 때문이다. 가령 한국이나 중국에서 LA항구로 넘어오는 식료품 컨테이너 비용은 팬데믹 이전에 5000달러 수준이었다. 이 컨테이너 안에 담긴 물건 가격은 평균 5~6만달러 수준이었다. 전체 물건가격 대비 물류비 비중이 10%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공급망 이슈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랐다. 현재 컨테이너 1대 물류비는 1만 5000달러 수준이다. 물류비 비중이 30%까지 오른 것이다. 오른 물류비는 식료품 판매가격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마트 관계자는 "이 비용은 단순히 한국에서 LA항구로 넘어오는 비용이다. LA에서부터 텍사스나, 조지아 등 타주로 배달하면 물류비는 또 든다"며 "LA에서 조지아로 배송되는 컨테이너 1대 운송비는 과거 5000달러에서 현재 1만 2000달러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구인난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대개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트럭 운전은 다른 업종과 비교해서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이다. 최근 구인난으로 인건비가 오르면서 트럭 운전을 했던 근로자들이 급여가 많고 일하기 쉬운 업종으로 이직하면서 운전자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연출됐다.
마트 관계자는 "컨테이너 운송 수요는 늘었는데 운송할 수 있는 여력은 줄었다"며 "부르는게 값이다. 그래서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을 보는 미국인들의 구매패턴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 마트의 한 관계자는 "고객들이 부담스러워하는게 눈에 보인다"며 "같은 양으로 담아도 지난해와 비교해서 가격이 배가 된다. 카트에 물건을 얼마 담지 않아도 100달러가 훌쩍 넘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고객들이 꼭 필요한 상품만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객단가가 전년대비 30%까지 올랐다. 다만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한 번 방문할 때 물건을 많이 구입했다면 지금은 자주 오면서 조금씩 구매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고 덧붙였다.
애틀랜타, 대도시 중 지난해 물가 상승률 '톱'
미국 주요 도시별로 소비자물가가 가장 빠르게 오른 지역은 어디일까. WSJ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인구 유입이 많은 지역에서 빠르게 상승했고, 인구가 비교적 적게 늘어난 해안 대도시 지역에서는 더 완만하게 나타났다.
노동부에 따르면 '애틀랜타-샌디 스프링스-로즈웰' 지역은 인구 250만 명이 넘는 대도시 지역 중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 상승률을 보였다. 지난해 12개월간 인플레이션 상승률은 9.8%에 달했다. 피닉스 9.7%, 세인트루이스 8.3%를 기록하면서 전국 평균인 7%를 웃돌았다.
반면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헤이워드 지역은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4.2%를 기록, 노동부가 데이터를 집계한 23개 대도시 중 가장 낮았다. 또 뉴욕 4.4%, 보스턴 5.3% 등에서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크지 않았다.
부동산 조사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애틀랜타의 중간 주택 가격은 전년대비 23%나 급등했다. 전국 평균 상승률은 15.2%였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중간 주택가격은 같은 기간 10.3% 올랐다.
WSJ는 "팬데믹 영향으로 인구가 대도시에서 교외나 소규모 도시, 특히 썬벨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따뜻한 날씨와 낮은 생활비를 추구하는 재택근무자들이 변화를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작된 공급망 이슈와 인플레이션은 미국의 인구 지형도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무디스, 에퀴팩스, 크레딧리포트 등이 조사한 인구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3월 이후 애틀랜타와 휴스턴 지역은 인구 1000명당 5명, 댈러스는 1000명당 12명의 인구가 유입됐다.
반면 샌프란시스코는 인구 1000명당 27명이 빠져나갔고, 뉴욕은 20명이 타주로 이주했다. WSJ은 이아 관련 "팬데믹은 해안가 도시에서 내륙으로의 인구가 이동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애틀랜타 이주가 늘어난 이유는 빠른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렴하고 살만한 수준의 물가 때문이었다.
지난 202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남편과 함께 애틀랜타로 이주한 앨리스 옌 씨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지출을 줄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불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얻고 있다"며 "확실히 베이 지역과 비교해 집값은 훨씬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산호세의 반도체 업체에 종사하는 한인 장모씨 부부는 최근 애틀랜타 미드타운에 위치한 콘도를 구입했다. 출장차 애틀랜타를 자주 찾는 남편이 거주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들 부부는 "과거 애틀랜타에 거주했다가 직장 때문에 산호세로 이주했는데, 장기적으로 애틀랜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물가도 그렇고 자녀를 양육하는 데도 여러모로 환경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말했다.
레드핀의 테일러 마르 이코노미스트는 "애틀랜타의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뉴욕, 샌프란 시스코와 비교할 때 여전히 저렴하고 매력적인 도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