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검은 토끼'를 놓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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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주 2022.08.25 06:22 PDT
파월, '검은 토끼'를 놓치다
(출처 : 그래픽: 장혜지)

[더밀크 오리지널 : 파워 오브 파월 #1]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누구일까요?
파월은 어쩌다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 사태를 유발한 걸까요?
파월은 어떻게 자신의 결정적 실수를 만회하려고 하는 걸까요?
더밀크는 10회에 걸쳐 매일 한 편씩 제롬 파월 스토리를 연재합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파월이 실수에 빠진 날입니다.

2021년 4월 28일 저녁.

전날(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난 직후였다. 이날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뜬금없이 홈리스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FOMC는 이날 FOMC에서 0.25% 수준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2020년 3월부터 13개월 동안이나 이어진 사실상의 제로금리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결정한 것. 2021년 4월 FOMC 직후엔 연준 의장과의 기자회견도 열렸다. 1년에 딱 4번만 하는 일종의 연준 의장식 도어스태핑이다.

기자들의 질문은 인플레이션에 집중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2021년 4월 13일 발표된 전달 3월 CPI가 2.6%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인플레이션 여부를 판단하는 연준의 중요한 잣대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미국과 전 세계를 강타하자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경제를 지키려고 구제 금융과 양적 완화라는 십자포화로 맞대응했다.

그럼에도 2020년 내내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2021년 3월 앞자리수가 2자로 바뀐 것이었다.

시장은 섬찟 놀랐다. 선명한 변곡점이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와글대기 시작했다. 기자들도 공격태세를 갖췄다.

정작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인플레이션을 강하게 부정했다. 방어논리는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PCE)였다. 사실 연준 내부적으론 CPI보다 PCE를 더 중요한 인플레이션 잣대로 활용한다. CPI는 물가다. PCE는 지출이 핵심 지표다.

연준은 통화정책기관이다. 연준이 시장이 풀어낸 돈이 실제로 소비로 얼마나 이어지는지를 알 수 있는 핵심 지표는 PCE다. 2021년 3월 26일 발표된 2월 PCE는 1.6이었다. CPI보다 양호했다. 파월은 12개월 평균 PCE 지표는 더 양호하다는 걸 애써 강조했다.

이미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되다 못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져버린 현재 시점에서 돌아보면 2021년 4월 28일 FOMC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인플레이션 징후가 처음 포착됐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자신이 상대할 인플레이션이라는 라이벌은 아직 링 위에 오르지 조차 못했다고 일축해버렸다. 파월은 이렇게 덧붙였다.

“연준은 최대 고용과 금융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2%대 평균 물가라는 목표를 지키면서 최대 고용을 이뤄내는데 연준의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2021년 4월 FOMC에서
2021년 4월 28일 FOMO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제롬 파월 연준의장 (출처 : 연방준비제도 유튜브 캡처)

파월, 인플레를 방관하다

그때였다. 파월은 갑자기 워싱턴DC 연방준비제도 본부가 있는 에클스 빌딩 근처 홈리스들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에클스 빌딩 주변엔 크고 작은 공원이 많다. 미국 어디서나 공원은 홈리스 밀집지역이다.

파월은 말했다. “코로나가 불러온 경제위기는 모든 사람들한테 공평하게 닥쳤던 게 결코 아닙니다. 경제적 취약 계층의 어깨 위에 더 가혹하게 내려앉았습니다.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계층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업률은 심각합니다. 지금 경제의 어떤 부분은 아주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아직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연준 의장으로서 내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파월이 언급한 잘 돌아가는 경제 부문이 월스트리트고 여전히 힘든 경제 부문이 메인스트리트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연준의장이 미국의 중앙은행은 자본 시장이 아니라 실물 시장 편이라고 공개 선언한 순간이었다. 파월은 인플레이션도 막으면서 고용도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두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연준의장이 에클스 빌딩 근처 홈리스를 언급한 걸 에클스 본인이 들었다면 기함할 노릇이었다. 에클스 빌딩은 연준 초대 의장인 마리너 S. 에클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1936년부터 1948년까지 재임한 에클스는 극심한 대공황에도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서 긴축정책을 고집했다. 에클스 재임 당시 실업률은 13%에 달했다. 에클스 시대엔 고용보다 인플레이션이 우선이었다. 1세기 만에 9대 연준의장 파월은 1대 연준의장 에클스와는 정반대로 연방준비제도의 역할을 재정의했다.

제롬 파월이 정의한 연방준비제도는 인플레이션 파이터이자 고용(임플로이먼트)의 수호자였다. 파월의 발언을 들은 뒤에도 기자들은 계속해서 인플레이션에 관해 캐물었다. 그렇지만 인플레이션으로 파월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국민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경제수장을 공식석상에서 저격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연준의장이 책임관할이든 아니든 말이다.

1년여 뒤 2022년 6월 미국 CPI는 9.1%를 기록한다. 41년만의 최고치였다. 14개월 전 작은 성냥불에 불과했던 인플레이션은 지금은 최악의 산불이 됐다.

그렇지만 1년 전 성냥불이 처음 발화됐던 결정적 순간에 제롬 파월은 인플레이션을 진화하는 대신 인플레이션 논란을 진압했다. 스스로 인플레이션 파이터에서 임플로이먼트 가디언으로 변신했다.

FOMC 직후 열리는 연준의장의 기자회견을 연준 내부에선 오픈 마우스 오퍼레이션이라고 부른다. 공개 시장 조작을 뜻하는 오픈 마켓 오퍼레이션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연준은 공개 시장 조작을 통해 국채 시장의 금리를 조정한다.

이날 파월은 오픈 마우스 오퍼레이션을 통해 여론 시장의 분위기를 조정했다. 솔직히 당시 파월의 선택은 코로나발 유동성 파티를 만끽하던 월스트리트와 코로나발 경기침체에서 애타게 탈출구를 찾던 메인스트리트 모두 환영할 일이었다. 파월은 그렇게 결정적 선택을 했다.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방관한 것이다.

사상최악의 실수. 2022년 6월 미국 CPI는 9.1%를 기록했다 (출처 : 월스트리트저널, 그래프: 김현지)

그렇다. 연준은 '고용'과 '물가'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 손에 잡는 것이 목표다. 그동안 운이 좋게도 연준 의장은 왼손엔 '고용'이라는 흰 토끼를, 오른손엔 '물가(인플레이션)' 이라는 검은 토끼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토끼는 밤이되면 잘 안보여서 순식간에 놓치기 쉽다. 이날 파월 의장은 검은 토끼를 놓친 것을 보지 못했다. 검은 토끼가 1년후엔 너무 커져서 주인을 잡아먹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밀크 오리지널 : 파워 오브 파월〉의 다음 두번째 에피소드는 한국시각 8월 26일 금요일밤 10시에 더밀크닷컴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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