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대전환기, 파워 오프 파월이 필요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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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주 2022.09.08 06:30 PDT
글로벌 경제 대전환기, 파워 오프 파월이 필요한 순간
제롬 파월이 2017년 11월 2일 도널드 ㅡ럼프 대통령에 의해 지명됐다. 사진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에서 당시 파월 차기 연준의장 지명자가 연설을 준비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날 파월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출처 : Gettyimages, 그래프: 장혜지)

[더밀크오리지널 : 파워 오브 파월 #15]
통화긴축을 밀어붙이는 연준의장만큼 미움 받는 존재도 없습니다
그래도 파월은 스스로 잭슨홀에서 던진 포워드 가이던스를 지킬 공산이 큽니다
그린스펀 이후 20여년 동안 연준은 약속을 지켜왔으니까요
제롬 파월 스토리 마지막 열다섯번째 이야기는, 파월이 자전거를 타던 순간입니다

“아무도 연준의장이 잠을 푹 자기를 원하지 않죠.”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2018년 어느 포럼에서 “잠은 푹 잘 자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뼈 있는 농담이었다.

특히나 연준이 완화가 아니라 긴축에 들어간 시기에는 말할 것도 없다.

연준의장은 공공의 적이 된다. 정치인도 언론도 대중도 연준의장을 증오한다. 이지머니는 달콤하지만 통화긴축은 잔인하다.

금리인상기의 연준의장은 살해위협을 받은 적도 많다.

폴 볼커가 대표적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볼커의 과격한 금리인상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영화가 〈조커〉와 〈행복을 찾아서〉다. 〈조커〉와 〈행복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대조적이다. 〈조커〉의 주인공 조커는 연준이 낳은 상상 속 괴물이다. 〈행복을 찾아서〉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크리스 가드너는 볼커의 금리 인상으로 은행 대출이 막히면서 사업을 말아먹고 길거리에 나앉는다.

볼커는 임기 내내 이중삼중의 경호원을 대동하게 출퇴근했다.

파월의 말처럼 아무도 연준의장의 잠자리가 편안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볼커가 파월을 칭찬한 적이 있었다.

파월이 금리를 인상하려고 트럼프에 맞서서 싸우던 시기였다.

볼커는 직접 파월에게 칭찬 메모를 보냈다.

정작 볼커는 파월이 실수하는 건 보지 못하고 죽었다.

볼커는 2019년 12월 8일 사망했다.

파월은 볼커가 평생에 걸쳐 세워둔 인플레이션 방벽을 무너뜨리는 실수를 했다.

버냉키는 인플레이션 없는 양적완화에 성공했지만 파월은 실패했다.

지금 파월을 짓누르는 건 볼커의 칭찬메모다.

현재 연준의 기준금리는 2.50%다.

올해 연준의 통화정책회의는 3차례 남아 있다.

파월은 연준의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4%대에 올려놓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 주요 언론과 월가에서는 9월 20일 FOMC에선 75bp, 자이언트 스텝 인상 가능성이 높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는 파월의 잭슨홀 연설은 분명한 포워드 가이던스였기 때문이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시장한테 연준의 정책방향에 대한 힌트를 흘리는 일이다.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처럼 연준의 포워드 가이던스 관행을 비판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포워드 가이던스 때문에 시장이 연준에 읽힌다는 이유다. 읽히는 연준을 시장은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대신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하고 그걸 스스로 지키면 연준은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적어도 연준이 시장이 싫어하는 불확실성을 높이는 일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준은 스스로 제시한 포워드 가이던스를 준수해왔다.

의도적인 불확실성은 상대를 이겨야만 하는 비협력적 게임에서만 필요하다. 연준에게 금융시장은 협력적인 게임이다. 연준은 시장이 연준을 두려워하길 원하지만 그렇다고 시장을 적으로 돌리려는 건 아니다.

20년 가까이 유지된 게임의 룰이 이번에 바뀔 가능성은 낮다.

리세션의 초상. 조커는 긴축을 추진한 볼커 연준이 낳은 영화 속 괴물이다. 사진은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출처 : warner bros. )

게다가 포워드 가이던스는 연준의 숨은 실세 가운데 하나인 미쉘 스미스의 작품이다.

연방준비제도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인 미쉘 스미스는 2001년부터 연준에서 일했다.

미쉘 스미스는 연준의 대외 소통 방식을 설계한 장본인이다.

시장은 연준을 신뢰하면서도 두려워한다.

미쉘 스미스는 우리가 익숙한 연준의 카리스마를 지켜내는 파수꾼이다.

FOMC 직후 연준의장의 기자회견이나 〈60미닛〉 같은 방송출연도 모두 미쉘 스미스가 연출한 것이다.

미쉘 스미스는 엘런 그린스퍼부터 벤 버냉키와 자넷 옐런과 제롬 파월까지 4명의 연준의장과 함께 했다. 진정한 연준의 터줏대감이다.

미쉘 스미스는 연준의장의 연설을 500개가 넘는 체크리스트를 통해 점검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결정은 파월이 하지만 연출은 스미스의 몫이다.

미쉘 스미스의 홍보원칙 가운데 제1원칙은 연준의장은 절대 자신이 한 말을 뒤집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미쉘 스미스의 첫 번째 보스였던 앨런 그린스펀은 이렇게 말했다. “실수를 했더라도 절대 설명하지도 사과하지도 마라. 그들이 당신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린스펀이 연준을 떠난 뒤에도 스미스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원칙을 지켜왔다.

파월도 예외가 아니다.

미쉘 스미스는 셰릴 샌드버그의 절친이다.

셰릴 샌드버그가 페이스북의 COO를 맡아서 실리콘밸리로 떠나기 전 샌드버그와 스미스는 서머스 재무장관의 아래에서 한 팀으로 일했다. 당시 스미스는 서머스의 대변인이었다.

스미스와 샌드버그는 평생 절친으로 지냈다.

두 사람 모두 거대 조직의 막후 실력자였다.

샌드버그가 마크 저커버그가 광고비즈니스를 이해하게 만든 것처럼 스미스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싫어하던 벤 버냉키를 설득했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제로 금리가 되면서 금리라는 수단이 동결된 연준은 포워드 가이던스를 이용해서 시장을 조작할 필요가 있었다.

잭슨홀에서 파월은 “우리는 그 일이 끝났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 한 마디가 생각 이상으로 무거운 약속인 건 그래서다.

덩케르크 미국 경제 구출 작전. 파월은 코로나 경제 위기로부터 미국 경제를 구하는 일을 2차 세계 대전 당시 덩케르크 구출 작전에 비유했다. 처칠은 괴멸 직전이었던 영국육군을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서 구출하면서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사진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의 한 장면. (출처 : warner bros. )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백악관보다 오히려 더 푸틴에게 분노했던 건 연준이었다.

파월 연준은 온갖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시도했었다.

푸틴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한 세대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를 날려버리게 만들었다.

이것이 연준을 이끄는 파월을 포함한 중앙은행가들의 시각이었다.

파월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거시 경제 지표부터 확인하는 성실한 아침형 인간이다.

파월은 코로나로 수십만명이 죽어나가는 상황과 메인스트리트도 초토화되는 상황에 더 없는 충격을 받았다.

파월이 돈풀기에 나선 건 미국의 상처를 달러로 달래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코로나 상황과 연준의 양적완화를 비교하면서 절친한테 파월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수영으로 스미트 보트를 뒤따라 가는 기분일세.”

파월은 상황을 문학적 메타포로 묘사하는걸 좋아한다. 파월은 2020년 코로나 상황을 덩케르크와 비슷하다고 표현했다. 덩케르크는 프랑스 해안에 고립된 영국군을 영국 해군과 민간인들이 구출해낸 작전이다. 절망적인 구출 작전을 뜻한다.

파월은 자신의 제로금리와 양적완화와 메인스트리트 구제 프로그램이 덩케르크 구축 작전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미국 경제를 덩케르크로부터 구출했지만 푸틴이 인플레이션 폭탄을 터뜨려서 망쳐버렸다.

푸틴은 인플레이션으로 덩케르크를 진주만으로 만들어버렸다.

지성주의의 상징. 파월은 반지성주의가 판을 치던 공화당에서 합리적 보수의 보루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출처 : Getty Images)

파월은 정치적으론 아버지보단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는 입이 무거운 변호사였다.

어머니는 공화당 지역 사무소에서 일할만큼 활발한 활동가였다.

파월의 어머니는 군 지도 제작소에서 통계 전문가로 일했다. 파월의 탁월한 기억력과 숫자 감각은 어머니로부터 왔다고 봐야 한다. 파월의 어머니는 공화당원이었다. 파월이 공화당원인 이유다.

파월의 어머니는 파월이 국가에 봉사하는 공직자가 되기를 원했다.

실제로도 파월은 프린스터 대학교에서 정부학을 공부했다. 행정학과 출신인 셈이다. 그런데 조지 타운 로스쿨을 나온 뒤 뉴욕 로펌으로 갔다가 그만 1983년 맨하튼의 투자회사로 이직하면서 월스트리트와 인연을 맺게 된다.

파월은 합리적인 공화당원의 상징이다.

파월이 처음 대중적으로 주목 받은 건 역설적으로 공화당 안에서 티파티라는 극단주의가 부상할 때였다. 티파티 공화당원들은 2010년 중간선거 이후 예산안을 부결시켜서 오바마 행정부를 셧다운시키려고 들었다. 언론들은 연방정부가 멈추면 세상이 멈추는 것처럼 공포를 조장했다.

파월은 자신의 블로그에 현재 남은 예산으로는 행정부가 언제 셧다운될 것이고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멈추고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는 기능할지를 정확하게 분석한 글을 올렸다. 파월은 논쟁하지도 설득하지도 않았다. 오직 팩트만 제시했다.

이 글로 파월은 일약 스타가 됐다.

동시에 반지성주의에 당당하게 맞서는 합리적인 공화당원의 상징이 됐다.

파월이 초당파적 지지를 얻어서 연준위원이 되고 다시 연준의장까지 되는데는 이런 합리성이 중요한 자산이 됐다.

파월은 처음 연준위원직에 추천한 건 공화당원이 아니라 민주당원인 티모시 가이트너였다. 티모시 가이트너는 뉴욕연준 총재였고 오마바 정부의 재무부장관이었다.

이때부터 쌓여온 파월의 합리성과 균형감각에 대한 정치권과 시장의 신뢰는 여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아직은 말이다.

연준의 우영우. 연준 안에서 파월의 카리스마는 천재적 두뇌에서 나온다. 사진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출처 : ENA )

비유하자면 파월은 연준의 우영우같은 존재다.

톱 대학을 졸업한 변호사들이 즐비한 대형 로펌 '한바다'에서도 가장 '천재급' 인재였던 우영우 처럼 파월은 천재들의 집단인 연준 안에서도 '천재급'으로 평가 받은 인물이다.

버냉키가 학문적 권위를 지녔고 옐런이 소통의 여왕이었다면 파월은 비상한 두뇌를 리더쉽을 확보했다. 특히 디테일까지 기억하는 파월의 어마어마한 기억력은 모두가 인정하는 초능력이었다.

사실상 우영우급 기억력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파월은 상대방이 한 말을 똑같이 거꾸로 따라하는 재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상대가 한 말을 한번에 외워버리는 능력이 있다는 얘기다. 동시에 상대방의 말을 단어 하나하나까지 빠짐없이 듣는 습관이 있다는 뜻이다. 정작 파월의 거꾸로 말하기를 직접 듣는 상대방은 매우 당황하곤 한다.

거의 우영우식 사교술이다.

천재도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한다.

또 다른 천재급 경제학자인 로렌스 서머스는 2021년 연준과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파월이 2가지 실수 가운데 하나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나는 글로벌 공급망의 보틀넥이 상황이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금리를 너무 빨리 조여서 경기를 하강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쳐서 수요 쇼크를 일으켜서 전통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파월은 후자의 실수를 저질렀다. 어떤 실수는 실수라는 걸 알면서도 저지를 수 밖에 없다. 연준의장은 불가능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다.

파월은 수준급 기타리스트다.

대학생 시절엔 유럽 배낭 여행을 다니면서 길거리 기타 버스킹으로 돈을 벌었다. 파월 1기 연준부의장이었던 리차드 클라리다도 파월 못지 않은 기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2018년 12월 두 사람은 연준 본부 에클스 빌딩 로비에서 기타 합주를 했다.

파월은 소문한 사이클광이다.

집에서 연준 본부까지 사이클을 타고 출근할 때도 있다. 연준 안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샤워를 하고 일을 시작한다.

경제와 자전거는 여러 모로 닮아 있다.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진다. 페달을 너무 세게 밟아도 넘어진다.

지금 파월은 자전거의 속도를 줄여야 하지만 넘어뜨려서도 안 된다.

지금이 파워 오브 파월이 필요한 순간이다.

파월의 초상. (출처 : 드로잉: 장혜지)

그동안 〈더밀크 오리지널 : 파워 오브 파월〉을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더밀크 오리지널은 새로운 인물과 기업에 대한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저널리즘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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