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사이클은 영원하지 않다… 5000조원 베팅의 6대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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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권 2026.07.05 03:51 PDT
슈퍼사이클은 영원하지 않다… 5000조원 베팅의 6대 리스크
향후 10년간 바뀔 대한민국의 산업지도 (출처 : 더밀크 (각사 발표 종합))

[집중분석] ⑤ 5000조원 투자, 지능 주권 승부수인가 국민 부담인가
-지역 분할이 아니라 역할 분업으로 보라
-글로벌 AI 산업전쟁 속 한국의 무기는 HBM과 제조 병목이다
-6대 리스크: 전력·사이클·수요·자금·인력·거버넌스
-성패는 투자 총액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에 달렸다

5000조원에 달하는 국가 산업 대전환 프로젝트의 본질은 무엇일까?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 5,000조원 투자를 국가균형발전으로 포장하고 있고 언론은 권역별 총액으로 받아쓰고 있다. 서남권 800조원, 충청 392조원, 영남 312조원이라는 숫자가 지역별로 오르내리며, 권역별 숫자만 앞세우는 보도와 정치적 해석은 이 프로젝트를 다시 지역 배분 경쟁으로 끌고 갈 위험이 있다.

그러나 5000조원 투자의 본질은 어느 지역이 더 받았느냐가 아니라, 각 권역이 어떤 역할을 맡아 하나의 AI 산업 플랫폼으로 연결되느냐다.

이 프로젝트는 규모만큼이나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전력, 메모리 사이클, 실리콘밸리 수요, 자금 조달, 인력·장비 병목, 정치·거버넌스라는 6대 리스크가 동시에 걸려 있다. 하나가 흔들리면 다른 축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5000조원 투자의 진짜 질문은 “어느 지역이 더 받았는가”가 아니다. “이 거대한 베팅이 지능 주권으로 이어질 것인가, 다음 사이클의 국민적 부담으로 돌아올 것인가”다.

이번 투자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리스크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할까?

[5000조원 프로젝트의 6대 리스크]

전력 리스크: 데이터센터 수요가 국가 전력 계획을 압박한다.
사이클 리스크: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언젠가 반드시 꺾인다.
수요 리스크: 5000조원의 운명은 실리콘밸리 AI 투자 지속 여부에 달렸다.
자금 리스크: 상당 부분은 기업 자체 자금이 아니라 파트너·PF·정책금융에 기대고 있다.
집적 리스크: 인력·장비·전력설비가 동시에 부족해질 수 있다.
거버넌스 리스크: 정치 논리가 산업 논리를 압도하면 과잉투자가 된다.

삼성전자 수원 사옥 (출처 : 삼성 뉴스룸)

1. 전국을 '지역 분할' 아닌 '역할 분업'체계로 보라

반도체와 AI는 한 도시나 한 권역에서 완결되는 산업이 아니라, 소재와 장비, 전공정과 후공정, 데이터센터와 전력이 하나의 사슬로 이어질 때만 작동하는 산업이다.

이번 투자 발표는 '글로벌 지정학'의 기준으로 보면 지역 '분할'이 아닌 '분업'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다. 국토 전체를 하나의 지능 생산 플랫폼으로 보고, 그 플랫폼을 미·중·일·대만·유럽이 벌이는 지능 주권 경쟁의 지도 위에 세워야 하는 것이다.

수도권과 경기 남부는 새롭게 만들어질 대한민국 AI 산업 플랫폼의 본진이다.

기흥과 화성, 평택, 용인이 D램과 HBM의 최대 생산 거점으로, 세계 메모리 공급의 심장을 이룬다.

충청권은 그 심장을 떠받치는 허리다. 천안과 온양, 아산, 청주, 세종이 HBM과 낸드, 첨단 패키징, 디스플레이, AI 서버용 기판, 그리고 바이오까지 아우르는 소재부품 벨트로, 본진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한다.

호남과 서남권은 이 플랫폼의 확장 부지다. 광주와 해남, 새만금이 메모리 신거점과 소버린 AI 데이터센터, 로봇과 수소를 받아, 포화된 수도권 바깥에 다음 세대의 생산 기반을 연다.

영남권은 이 플랫폼의 상층부다. 구미와 부산, 울산, 대구가 휴머노이드와 피지컬AI, 배터리, 미래차의 제조 AI를 맡고, 창원과 사천, 진주가 발사체와 위성, 국방 AI라는 남이 대체할 수 없는 주권의 층을 담당한다.

이렇게 놓으면 그림이 달라진다. 충청이 받은 것은 그릇을 떠받치는 허리이고, 호남이 받은 것은 그릇 자체의 신규 부지이며 영남이 받은 것은 그릇 위의 지능과 주권이다.

어느 지역이 더 받았는가는 잘못된 질문이다. 옳은 질문은 이 네 층이 하나의 사슬로 연결되어 작동하는가다. 충청의 소재가 수도권의 팹에 제때 들어가고, 호남의 데이터센터가 영남의 지능과 이어지며, 전국 전력망이 이 모두를 동시에 감당할 때, 비로소 국토는 하나의 플랫폼이 된다.

메가 프로젝트 완성 연도별 타임라인 (출처 : 더밀크 (각사 발표 종합))

2. 글로벌 AI 산업전쟁의 현실을 인식하라

이처럼 국토를 하나로 보아야 하는 진짜 이유는 국내 균형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 구도에 있다. 지금 세계의 주요국은 저마다 자국 전체를 하나의 지능 플랫폼으로 재편하고 있고, 한국의 5,000조원 투자는 그 경쟁의 한복판에 놓인다.

미국은 AI를 전략 무기화하며 통제 전략을 세웠다. 2022년 이후 엔비디아 최첨단 칩의 대중 수출을 단계적으로 틀어막고 2026년 4월 H20까지 금지했으며, 지난 6월에는 AI를 국가안보 의제로 재편하는 행정명령으로 프런티어 모델을 공개 전 검토하는 절차까지 만들었다. 세계 AI 스택의 상층부를 쥔 나라가 그 접근을 무기화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맞선 국산화, 오픈소스화 전략이다. 시진핑이 자립자강을 국가 총력 과제로 못 박았고, 국가 반도체 펀드 3기 470억달러와 데이터센터망을 80% 국산 실리콘으로 채우는 2,950억달러 계획으로 화웨이를 축에 세워 전 계층의 자급을 밀어붙인다.

유럽은 공공 투자의 전략이다. 인베스트AI 2,000억유로로 AI 기가팩토리 4~5곳을 세워 데이터 주권과 AI 자립을 확보하려 한다.

일본은 국가가 직접 주주가 되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2026년부터 연 1조엔을 AI와 반도체에 배정하고, 라피두스에 보조금을 넘어 지분까지 투입해 2nm 로직을 겨냥하며, 후지쓰와 라피두스의 1.4nm NPU로 모델부터 칩까지 풀스택 주권을 노린다.

대만은 TSMC라는 단일 거점에 세계 최첨단 파운드리를 극한으로 집적한 전략이다. 미국이 애리조나에 120억달러를 들여 그 생산을 복제하려 하지만, 3년이 지나도 애리조나 팹은 대만 본진보다 한 세대 뒤처진 칩을 만든다. 공장은 옮겨도 학습곡선은 옮길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대만이 증명한 집적의 힘이다.

이 지도 위에 한국의 5,000조를 놓으면, 한국의 위치와 과제가 선명해진다.

미국은 통제할 칩과 모델을 쥐었고, 중국은 14억 내수와 국가의 인내를 가졌으며, 유럽은 단일시장과 규제 권한을, 일본은 국가 주주라는 자본을, 대만은 극한의 집적을 가졌다.

한국이 가진 지렛대는 그 무엇도 아닌, HBM과 첨단 제조라는 물리적 병목이다. 세계의 모든 지능이 결국 통과해야 하는 메모리의 관문을 한국이 쥐고 있다는 것, 이것이 한국의 무기다. 여기에 '지능 주권'을 갖기 위해 5000조원을 투자하려 하는 것이다.

주요 그룹 신규 투자1148조원 현황 (출처 : 더밀크 (각사 종합))

3. 5,000조원 투자의 6대 빅리스크 .. 피해갈 수는 없다

지정학적으로 불가피한 투자라 해도, 실행에는 여섯 개의 현실적 장벽(리스크)이 있다. 이 벽을 넘지 못하면 사상 최대의 베팅은 사상 최대의 좌초로 돌아올 수 있다. 그 후폭풍은 기업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감당하게 된다.

5,000조원 투자는 지정학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것과 실현되는 것은 다르다. 더구나 방향이 옳다고 앞으로 집행 과정도 순조롭다는 뜻은 아니다. 이 투자는 총액의 크기만큼이나 큰 실행 리스크가 있다. 이 리스크는 서로 얽혀 있어,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것도 함께 흔들리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3-1. 전력 리스크: 원전 10기급 전기를 어디서 가져올 것인가

가장 크고 임박한 리스크는 전력이다. 현재 추진 중인 AI 데이터센터 계획 상위 10곳만 합쳐도 전력 수요가 5.26기가와트(GW)에 이르는데,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잡은 2038년 데이터센터 추가 수요는 4.4GW에 불과하다. 계획된 수요가 이미 국가 전력 계획을 초과한 것이다. 여기에 SK가 발표한 15GW를 포함해 정부가 2035년까지 세우겠다는 데이터센터가 18.4GW 규모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속도의 불일치다. 데이터센터는 2~3년이면 가동에 들어가지만, 그 전력을 실어 나를 송전선과 변전소, 발전 설비는 최소 5~7년이 걸린다. 공장 건설 허가가 나도 전력 접속이 늦으면 생산은 시작될 수 없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완공 일정은 건물 공정표가 아니라 송전망 공정표와 함께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전력이 나는 곳(해안과 지방의 원전·재생에너지)과 수요가 몰리는 곳(수도권)이 어긋나 있어, 발전량이 충분해도 송전망이 부족하면 전기를 제때 받지 못한다. SK가 지난 2020년 새만금 데이터센터를 345kV 송변전 지연으로 접었던 전례가 이 벽의 실체를 보여준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김성환 장관도 2030년 이전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핵심이라고 언급했다. (출처 : 국회방송)

3-2. 사이클 리스크: 슈퍼사이클은 영원하지 않다

두번째 빅 리스크는 '사이클'이다. 메모리는 지난 30년간 잔인할 만큼 일정한 각본을 따랐다. 값이 오르면 모두가 팹을 짓고, 그 공급이 몇 년 뒤 한꺼번에 쏟아지면 값이 무너지고, 모두가 적자를 보다가 투자를 줄이면 다시 부족이 온다.

원인은 산업의 구조 자체에 있다. 팹 하나를 짓는 데 150억에서 200억달러가 들고 2~3년이 걸리는 반면, 한번 지은 팹은 감가상각이 원가의 대부분이라 값이 무너져도 현금원가만 넘기면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역사는 이 각본을 반복해 증명했다. 1993년 윈도우 PC 슈퍼사이클에서 선두 업체들의 매출총이익률이 50%를 넘었고, 바로 그 호황을 믿고 1995년과 1996년에만 약 50건의 팹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반도체 생산 대비 설비투자 비중이 한때 30%를 넘겼는데, 이는 사이클 후반의 전형적 신호였다. 결과는 공급 과잉과 붕괴였고, 대만 D램 산업이 통째로 무너진 것도 이때다.

2017년과 2018년의 클라우드발 슈퍼사이클 역시 2년을 넘기지 못하고 가파른 폭락으로 끝났다. 2022년과 2023년 초에도 D램과 낸드가 원가 밑에서 팔렸고 재고가 쌓였으며, 업체들은 감산으로 겨우 출혈을 막았다. SK하이닉스가 그해 7조원대 영업손실을 낸 것이 바로 이 국면이다.

이번 사이클도 2027년과 2028년에 끝날 것으로 예측하는 반도체 전문가들이 많다. 슈퍼사이클은 영원하지 않다. 이번 투자가 '과잉 투자'로 결론이 나면 혹독한 후폭풍을 견뎌야 한다. 이번 사이클의 산이 높았던 것만큼 하락도 가파를 수 있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이 호황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끝을 설계하는 것이다. 정점에서 가장 크게 베팅한 자가 다음 바닥에서 가장 크게 무너진다는 것, 그것이 메모리 30년이 예외 없이 증명한 사실이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D램 슈퍼사이클의 역사. 이번 호황은 역대 어느 시점보다 높다. 그만큼 사이클이 끝나면 하락의 속도와 높이가 가파를 수 있다. 슈퍼사이클은 영원할 수 없다. 하락장에 어떻게 탄력성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출처 : 더밀크)

3-3. 수요 리스크: 5000조원의 운명은 실리콘밸리에 달렸다

세 번째 리스크는 이 모든 투자의 뿌리다. 메모리와 데이터센터 수요는 전적으로 하이퍼스케일러의 AI 설비투자에서 나오고, 그 설비투자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AI의 투자수익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5,000조원이나 되는 투자의 기저에는 'AI가 결국 그만한 돈을 벌어줄 것'이라는 하나의 믿음이 놓여 있다. 이 믿음이 흔들리면 사슬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문제는 그 믿음이 실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구글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네 곳은 2026년에만 7,250억달러를 AI 인프라에 쏟아붓지만, 그 지출이 그만한 매출과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확증은 아직 없다. 빅테크 기업들의 리스크이기도 하다.

AI가 만드는 매출은 빠르게 늘고 있으나 여전히 투입된 설비투자에 비하면 작고, 그 격차를 '미래의 수요'라는 기대가 메우고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지금의 지출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대체로 '지금 짓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이지, '이만큼 지으면 이만큼 번다'는 것이 아니다. 투자수익이 아니라 경쟁 공포가 지출을 끌고 가는 국면에서는, 한 사람이 발을 빼는 순간 모두가 동시에 멈출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자사 투자의 근거로 든 노무라 전망이 이 취약성을 압축한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2025년 4,660억달러에서 2030년 3조3,790억달러로 5년 만에 7배 넘게 는다는 이 곡선은, 전형적인 하키스틱이다.

그러나 이런 하키스틱 전망은 지난 20년간 메모리 산업에서 여러 번 그려졌고, 그때마다 그래프의 오른쪽 끝은 예정대로 오지 않았다. 채찍효과 때문이다.

노무라증권은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2025년 4,660억달러에서 2030년 3조3,790억달러로 5년 만에 7.2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출처 : 더밀크)

채찍효과는 공급 부족 국면에서 불확실성이 증폭된다는 이론이다. 물량을 확보하려는 고객들이 실제 필요보다 많이, 미리 주문하는 이중 발주가 수요를 부풀리기 때문이다. 재고가 몇 주 단위로 마른 지금의 숫자에는 진짜 수요와 공포에 의한 가수요가 뒤섞여 있고, 생산자는 그 둘을 실시간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부족이 심할수록 주문은 더 부풀고, 부풀수록 생산자는 그 신호를 진짜 수요로 착각해 증설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족이 해소되면, 부풀었던 주문이 한꺼번에 취소되고 앞당겨졌던 수요가 빈자리를 드러낸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AI 설비투자가 숨을 고르고, 이중 발주로 부풀었던 가수요가 꺼지며, 정점에서 지은 팹들이 한꺼번에 가동에 들어가는 시점이다. 이 세 가지가 신규 공급이 쏟아지는 2027년에서 2028년이라는게 전문가들 예측이다.

결국 이 리스크의 본질은 통제 불가능성이다. 전력은 국가가 지으면 되고 조달은 자본을 구하면 되지만, 수요는 한국이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결국 5,000조원 투자 계획의 운명은 한국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몇몇 기업의 설비투자 결정과 AI의 수익성 증명에 달려 있다.이것이 통제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리스크다.

공급망을 결정하는 것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인 빅테크 기업이다 (출처 : 더밀크)

3-4. 자금 리스크: 기업 돈인가, 동원 자본인가?

네 번째 리스크는 돈의 출처다. 이번 투자 발표마나 보면 마치 기업들이 스스로 마련한 돈처럼 읽히지만, 상당 부분은 외부에서 끌어와야 할 자본이다. SK의 15GW 데이터센터 약 1,000조는 파트너 투자와 고객 입주 계약,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조달한다.

현대차는 175조원의 차입 부담과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 탓에 정책 금융과 외부 자산에 기댄다. 한화의 우주·국방은 정부의 공공 수요와 국방 예산에 의존한다.

5,000조 중 이번에 새로 결정된 신규는 약 4분의 1이고, 그 신규 안에서도 가장 큰 데이터센터와 우주·국방은 자체 자금이 아니라 동원 자본에 기댄다. 금리가 오르거나 파트너가 발을 빼거나 예산이 조정되면, 이 조달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3-5. 집적 리스크: 인력·장비·전력설비가 동시에 부족해진다

다섯번째 리스크는 집적의 역설이다. 삼성과 SK, 현대차, 한화가 같은 시기에 여러 권역에서 동시에 팹과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개별 기업의 눈으로 보면 저마다 합리적 투자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한정된 건설 인력과 장비, 소부장 공급을 여러 곳이 한꺼번에 요구하며 서로의 발목을 잡는 구조다.

개별적으로는 나뉘어 있으나 자원 조달에서는 집적되는, 그래서 병목을 만드는 역설이다. SK하이닉스가 발표 자료에서 "건설 인력과 장비 수급이 타이트해질 수 있다"고 인정하고, 팹별 클린룸 가동 시점을 단계적으로 나눠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이 이 리스크의 실체다.

전력 장비에서 이 병목은 더 구체적이다.

데이터센터와 팹의 심장인 초고압 변압기와 가스터빈은 이미 글로벌 공급 부족으로 납기가 과거의 두세 배로 길어졌다. AI 데이터센터 붐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나면서, 한국 기업들은 국내 경쟁사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데이터센터 사업자들과도 같은 장비를 두고 줄을 서야 한다. 변압기 하나의 납기가 몇 년씩 밀리면, 팹이 완공돼도 전기를 넣지 못해 가동이 미뤄진다. 돈으로도 시간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는 물리적 병목이다.

가장 근본적인 병목은 사람이다. 정부가 반도체 전문인력 10만 양성을 약속했지만 이번 계획이 요구하는 인력은 반도체에 그치지 않는다.

15GW 데이터센터를 설계하고 운영할 전력·냉각 엔지니어, 소버린 AI와 국방 AI를 만들 AI 개발자, 발사체와 위성을 다룰 우주 인력까지 동시에 길러내야 한다. 이들은 몇 개월 교육으로 채워지는 자리가 아니라, 수년의 축적이 필요한 고급 인력이다. 한 분야의 인력을 늘리려 다른 분야에서 끌어오면, 결국 국가 전체의 인재 풀 안에서 자리만 옮겨 앉는 제로섬이 될 수 있다.

이 세 가지 병목이 겹치는 곳에 분산의 비효율이 있다. 반도체는 팹과 소부장, 인력, 전력이 한곳에 모일 때 학습곡선이 쌓이고 경쟁력이 나오는 집적의 산업이다. 그런데 한정된 자원을 네 권역에 동시에 흩으면, 어느 곳도 임계 규모에 이르지 못한 채 자원만 나눠 갖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목표가 집적이라는 산업 논리와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다극화가 시너지를 내면 국가 역량이 두터워지지만, 단순 분산으로 끝나면 전체의 속도를 늦추는 자기 발목 잡기가 된다.

3-6. 거버넌스 리스크: 정치가 산업 논리를 이길 때 생기는 위험

마지막 리스크는 이 계획을 관통하는 정치적 성격이다. 5,000조원 투자는 청와대 무대에서, 권역별로 나뉘어, 국가균형발전의 언어와 함께 발표됐다. 이는 산업 논리만큼이나 정치 논리가 배분에 작용했음을 뜻한다.

정권이 바뀌거나 재정 여건이 달라지면, 세액공제와 보조금, 공공 수요 같은 국가의 몫이 흔들릴 수 있다. 대만이 D램을 국가 전략으로 지정한 순간 도덕적 해이와 정점의 과잉 증설로 무너진 전례가 여기서 경고가 된다. 국가의 지원이 기업의 규율을 대체하면, 실패해도 정부가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과잉 투자를 부를 수 있다.

전력과 산업, 입지, 인허가, 인력을 하나로 조정할 통합 거버넌스가 없으면, 각 부처와 지자체와 기업이 따로 움직이며 계획 전체가 지연된다. 전문가들이 한국 구조의 진짜 병목으로 전력망 속도, 수요와 공급의 지역 불일치와 함께 통합 거버넌스의 부재를 꼽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가운데)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박수를 치고 있다. (출처 : 청와대 사진기자단)

더밀크의 판단: 리스크는 피할 수 없다, 회복력이 승부를 가른다

지역 균형발전으로 포장된 3대 메가프로젝트의 본질은 AI 시대 산업 안보 전략이다. 그러나 전력, 사이클, 수요, 자금, 인력·장비, 거버넌스 리스크를 넘지 못하면 한국의 사상 최대 베팅은 지능 주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부담이 될 수 있다.

예견된 리스크를 대하는 태도는 없애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전력난도, 사이클의 붕괴도, 수요의 불확실성도 한국이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은 '어떻게 리스크를 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리스크가 현실이 됐을 때 얼마나 빨리 회복할 것인가'로 옮겨야 한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회복력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운명이 정반대로 갈리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메모리 침체는 모두를 덮쳤지만, SK하이닉스는 적자를 견디며 HBM 투자를 이어가 그 바닥에서 오늘의 패권을 만들었다. 반면 대만의 D램 기업들은 같은 사이클에서 무너졌다. 충격의 크기가 아니라 충격을 흡수하고 되튀는 힘이 승자와 패자를 갈랐다.

약 5,000조원의 성패도 여기서 결정된다. 사이클은 언젠가 꺾이고 수요는 흔들리겠지만 그때 무너지지 않고 다음 상승에 가장 먼저 올라타는 탄력성을 갖추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다.

회복력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재무의 회복력은 정점의 유혹에 전부를 걸지 않고, 다운턴에도 다음 세대 투자를 멈추지 않을 자본의 여백을 남겨두는 데서 나온다.

조달의 회복력은 외부 자본과 정책 금융에 기댄 데이터센터와 우주·국방 부문이, 금리와 예산이 흔들려도 버틸 완충을 갖추는 데서 나온다. 인프라의 회복력은 전력망과 인력이라는 국가의 몫을, 팹이 완공되기 전에 앞당겨 깔아두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섯 리스크가 연쇄할 때 무엇을 먼저 지키고 무엇을 미룰지 판단할 통합 거버넌스가 회복력의 중추다. 하나의 리스크가 터졌을 때 그것을 흡수하지 못하고 연쇄 붕괴로 번지게 되면 안된다.

방향은 옳다. 지능 주권을 향한 이 베팅은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위험이고, HBM이라는 관문을 쥔 한국은 그 위에 지능을 쌓을 조건을 가졌다.

5,000조원 투자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치 논리에 함몰 돼 금액을 얼마나 자랑하느냐가 아니라 충격이 왔을 때 얼마나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느냐다. 정점의 높이가 아니라 바닥에서의 탄력성이, 이 거대한 전환의 진짜 실력이다.

리스크는 피할 수 없다. 투자 계획 수립과 동시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도 준비해야 한다. 10년 뒤 5,000조의 값을 정하는 것은, 이 투자가 얼마나 컸는가가 아니라 몇 번의 충격을 견디고도 살아남았는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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