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백 · 김기림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조지 소로스

전설적인 헤지펀드 매니저... 1973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20% 수익률 달성
투자 방식: 탑-다운 분석으로 시장 비효율성 활용... 레버리지, 큰 베팅으로 고수익
투자 철학: ‘오류성(Fallability)’과 ‘재귀성(Reflexivity)’... 인간의 불완전성 이용

전설적인 헤지펀드 매니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두 얼굴의 연금술사’로 불리운다. 1992년 영국은행 침몰, 1997년 태국 밧화 매도로 아시아를 경제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로스는 엄청난 규모의 자선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시리아, 이라크, 미얀마 난민 지원, 기후 정책 자문기관 설립은 물론, 최근에는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사람을 위해 긴급자금 지원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가 동구권 개방 지원과 자선사업을 위해 세운 ‘오픈 소사이어티(Open Society Foundations)’는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이어 기부금 총액 세계 2위 자선 재단이다. 오픈 소사이어티에 따르면 그는 1984년 이후 재단에 총 320억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워렌 버핏과 나이가 같은 소로스는 1969년 퀀텀 펀드(Quantum Fund)라는 헤지펀드 회사를 설립한 이후 40년간 금융계 일선에서 활약하며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1973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약 20%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그 후 외부 투자자들의 돈을 받지 않는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의 회장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투자자 스토리

나치 대량 학살에서 살아남다

조지 소로스는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과거가 투자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1944년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했을 때 아버지 티바다르 소로스(Tivadar Soros)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바탕으로 기지를 발휘해 가족들을 보호했다. 당시 헝가리를 점령한 독일군은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는데, 유대인 법률가들을 소환하겠다는 독일군의 인쇄물을 본 소로스의 아버지가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줬다. 본인과 가족의 이름을 모두 바꿔 흩어져 살도록 했고, 덕분에 가족들은 전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판단과 예측을 토대로 과감하게 대응한 아버지의 모습은 후에 투자자가 되는 것을 비롯해 그의 투자 철학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배경이 됐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와의 만남

1947년, 소로스는 런던정경대학(LSE)에 입학하게 된다. 소련으로 인해 동유럽이 공산화되면서 자유가 사라질 것을 직감한 아버지가 소로스를 먼 친척이 살고 있는 영국 런던으로 보낸 것이다. 그곳에서 소로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하나인 칼 포퍼(Karl Popper) 밑에서 공부하게 된다. 칼 포퍼는 인간은 진리를 알 수 없으므로 여러가지 ‘시도와 실패(trial & error)’를 통해 진리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소로스의 투자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졸업 후 철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금전적인 부담으로 상업은행에 취직한다. 이후 동료의 추천으로 미국의 금융상품중개(Brokerage)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1956년 27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이주한다. 에프엠 마이어(F. M. Mayer) 브로커에서 3년 동안 유럽 주식 전문(arbitrage trader)으로 베르트하임(Wertheim and Co.)에서는 유럽 증권 분석가로 일했다. 유럽 증권 분석가로 일하면서 소로스는 칼 포퍼 철학을 확장한 재귀성 이론을 발전시켰다.

소로스의 원래 계획은 철학자로 활동하기 위해 5년 안에 50만 달러를 모은 후 영국으로 돌아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투자 활동에 흥미를 느끼면서 당시 유서 깊은 투자은행인 안홀드 앤 S. 블라이흐뢰더(Arnhold and S. Bleichroeder)로 이직했다. 처음 회사의 자기자본을 운용했을 때 규모는 10만 달러였지만, 3년 후 1969년에는 4백만 달러 규모의 더블 이글(Double Eagle) 헤지펀드를 운용했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설립

소로스는 1970년에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두 펀드를 운영하는데 이해 상충의 문제가 발생해 1973년 짐 로저스와 파트너쉽을 맺고 독립, 이름을 퀀텀펀드(Quantum Fund)로 변경했다. 짐 로저스의 딜 소싱(펀드멘털 분석과 테마발굴)능력과 소로스의 모멘텀 철학은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 1980년까지 4200%의 놀라운 수익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같은 기간 S&P 500 상승률은 47%였다.

돈은 꽤 벌었지만, 소로스 개인에게는 불안정한 시기였다. 1980년 동업자 짐 로저스가 회사를 떠났고 다음해 23%의 손실을 냈다. 이혼 후 매우 힘들어 했던 소로스는 3년간 심리 치료를 받았고, 휴식 후 다시 복귀했다.

그는 1987년 ‘금융의 연금술(The Alchemy of Finance)’을 출간 했는데 이 책을 보고 찾아온 펀드매니저 드러켄밀러(Druckenmiller)와 친분을 맺게 된다. 소로스는 드러켄밀러를 펀드매니저로 고용하고, 1989년부터 2000년까지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임명해 최고 자산가치가 220억달러에 달했던 펀드를 운영했다. 

드러켄밀러가 떠난 후 2000년 이후부터는 외부투자자들의 돈을 받지 않는 클로즈펀드 형태로 운용했다. 2011년에 SEC 규제 강화로 인해 남아있던 외부 투자자들에게 약 10억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모두 돌려줬고, 자기자본 245억달러로 패미리오피스(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를 설립, 지금까지 운용하고 있다.  

검은 수요일의 악명 높은 주인공

1992년 소로스는 몇 달 동안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거대한 공매도 포지션을 구축했다.

당시 유럽에서 유로화 통일을 위해 도입한 유럽 환율 메커니즘 (ERM; European Exchange Rate Mechanism)에서 영국은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독일은 통일한 직후였고, 서독은 동독과 경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마르크를 마구 찍어냈다.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독일 통화 당국은 금리를 높였고, 2년 동안 10번이나 금리를 인상했다.

영국은 파운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금리를 높여야 했지만, 소로스가 보기에 영국의 금리는 이미 너무 높았다. 인플레이션도 너무 높았으며(독일 환율의 3배) 자산 가격에 이미 타격을 주고 있었다. 소로스는 영국 정부가 금리를 ERM에 속한 다른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리거나 통화를 변동시키는 것을 꺼릴 것으로 확신했다.

‘검은 수요일’로 불리는 1992년 9월 16일, 그는 100억달러 이상의 영국 파운드를 공매도했다. 공매도는 향후에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산을 타인으로부터 빌려서 팔고, 나중에 실제로 가격이 하락했을 때 싸게 사서 빌린 이에게 돌려주고, 그 차액을 얻는 거래 기법이다.

소로스의 퀀텀펀드와 다른 헤지펀드들이 합세해 영란 은행과 환율 전쟁을 시작한 셈이다. 영란 은행의 무기는 440억달러의 외환보유고와 금리 인상 권한이었다. 영란 은행은 파운드를 사들이며 이틀에 걸쳐 금리를 각각 2%, 3% 올리며 환율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영국은 이틀만에 270억달러를 탕진하고 ERM시스템에서 탈퇴하며 항복을 선언했다.

그 결과, 파운드는 마르크 대비 14% 하락했고, 영국 국민들은 40억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소로스는 이 거래에서만 1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로스는 1996년 똑같은 방법으로 핀란드 마르카를 공매도해 1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공개된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 자료는 해당 회사가 미국증권거래 위원회(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에 제출한 13F 보고서를 기준으로 작성 되었으며, 현재 포트폴리오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소로스의 투자철학

소로스가 추구하는 투자 전략은 ‘오류성과 재귀성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투자자의 잘못된 인식에 따른 행동의 오류와 시장의 상호작용 사이에 발생하는 불완전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포착하면 소로스는 주저하지 않고 큰 레버리지를 일으켜 수익을 극대화 시킨다.

오류성(Fallability)은 ‘생각하는 참여자’가 바라보는 세상이 실제 세상과 절대 일치 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사람들은 개별적인 사실에 대한 지식은 알 수 있지만, 전체적인 관점을 형성하는데 있어서는 편견을 가지거나, 일관되지 않거나, 혹은 둘 다 일 수밖에 없다. 즉, 세상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단순화하거나 일부만을 바라본다. 이 때, 생각의 왜곡과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재귀성(Reflexivity) ‘행위자가 의사결정을 할 때 자신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고 가정했던 주류 경제학의 대안 이론이다. 소로스는 금융시장과 사회 시스템에는 인간 인식의 불완전함 때문에 재귀성이 내제돼 있다고 말한다. 재귀성 이론은 누적되는 변화 추세를 일찌감치 알아내 파탄에 이르기 전에 탈출하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소로스는 투자를 하거나 사회 이슈를 바라볼 때 언제나 이 관점에서 시작한다.

오류성과 재귀성이 가지는 함의를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경제를 재귀적인 시스템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미래의 거품, 붕괴 또는 정책 오류를 모두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현상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지게 하고 미래의 문제를 더 잘 관리하도록 도울 수 있다.

물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불확실성은 정량화 할 수 없다. 하지만 추세와 추세 변화는 정량화하지 않고도 파악할 수 있으며, 발생 시기를 특정하지 않더라도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또 불확실성은 대체로 정량화가 가능한 변동성(volatility)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주식시장 뿐 아니라 모든 금융시장, 정치 분야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조지 소로스의 재귀성 이론은 투자자 심리와 실제 시장에 나타나는 현상의 관계를 잘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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